등록 : 2006.09.05 18:19
수정 : 2006.09.05 18:19
사설
이중섭, 세상에 그와 견줄 수 있는 화가는 빈센트 반 고흐뿐이라고 우리는 자랑한다. 70% 이상의 한국인이 기억하고, 가장 많은 이들이 사랑한다. 오늘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지 50년째 되는 날이다. 그러나 오늘 그를 기념하고 기억하는 행사는 거의 없다. 화단은 그 흔하디 흔한 회고전이나 세미나 따위도 마련하지 않았다. 50년 전 그가 적십자병원에서 홀로 숨질 때와 문화 입국을 자처하는 지금이나 다를 게 없다.
50주기가 이렇게까지 참혹하게 된 원인은 그의 작품에 대한 잇따른 위작 논란이었다. 지난해 3월 서울옥션에서 거래된 작품 넉 점이 시비에 걸린 뒤 그의 이름을 달고 나온 작품들은 사사건건 논란에 휘말렸다. 지난해 10월 국립현대미술관의 한국미술 100년전에 출품된 ‘부부’, 지난 5월 국립현대미술관의 기획전 ‘근대의 꿈’에 출품된 ‘물고기와 아이들’ 등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작품은 드로잉이나 스케치마저도 억대를 호가했으니, 위작의 유혹과 시비는 끊이지 않았다. 여기에 유족의 소장품마저 시비에 걸리고 검찰이 수십점에 대해 위작 의심 판정을 내렸다. 시장에서 그의 작품이 사라지고 평단이 입을 다무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예술을 오로지 사고파는 상품으로만 여기는 세태는 한 위대한 예술가의 작품세계를 관속에 묻어버렸다.
그는 식민 지배와 전쟁 그리고 가난 속에서도 최고의 예술을 선사했다. 그러나 세상은 그를 배반했다. 1955년 그는 삶의 희망이자 창작의 원동력이었던 가족들을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마지막 개인전을 마련했다. 대성공이었다. 그러나 그는 화구비나 갤러리 임대료도 건지지 못했다. 작품값은 중간상이 대부분 가로챘다. 절망한 그는 이듬해 신경쇠약, 영양실조, 간경화 등으로 세상을 떠났다.
위작 논란은 감정제도를 정비하고 감정기관의 권위를 세우는 것으로 해결할 일이다. 문제는 그런 논란이 한 위대한 예술가의 예술세계마저 매장하는 현실이다. 이는 작품을 돈으로만 보고 환산하는 행태에서 비롯됐다. 화단은 작가에게 ‘호당 얼마짜리’라는 단가만 붙일 뿐, 작품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는 외면했다. 이중섭의 작품세계가 제대로 된 분석이나 평가도 받지 못하고, 삶의 자취와 작가정신이 정리되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이다. 돈의 포박에서 이중섭이 풀려날 때는 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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