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9.11 18:12
수정 : 2006.09.11 18:12
사설
서울대의 2008년 입시 전형계획이 교육당국과 고등학교를 깊은 고민에 빠뜨렸다. 서울대는 정시모집에서 교육부가 권장하고 학교가 요청한 대로 수능을 사실상 자격고사화하고 내신 비중을 높였다. 서울대는 동시에 논술과 면접의 비중도 크게 늘려, 당락이 사실상 논술·면접 점수로 결정되도록 했다. 특기자 선발도 마찬가지다.
교육부의 고민은 서울대 전형계획이 권고를 어기진 않았지만, 심각한 부작용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전형계획은 서울대에 그치지 않고 다른 주요 대학에도 곧바로 전파되는 파급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학교는 교육당국보다 고민이 더 크다. 사실 서울대가 하겠다는 교과통합형 논술 평가에 만족할 만한 교육을 제공할 만큼 준비된 학교는 없다. 학교가 그런 교육을 제공하지 못하면 아이들은 사교육에 의지하게 된다. 학교 교실은 더 외면당하게 된다. 쏟아지는 교육단체의 비난을 서울대는 비켜가기 어렵다.
그렇다고 서울대를 무턱대고 비난할 순 없다. 새 교육과정의 목표가 비판적 사고력을 기르고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는 데 있다면, 논술 및 서술형 평가는 강화돼야 마땅하다. 학교가 암기형 지식이나 측정하고, 단답식 문제풀이나 가르치면서 새로운 인재 양성 운운 할 수는 없다. 서울시교육청도 연초부터 일선 학교에 논술형 학력평가 체제 도입을 적극 권장해 왔다. 사회의 입사시험에서도 단답형 문제풀이보다는 논술 혹은 심층면접이 중시된다. 공교육의 변화에 조응하는 것이라는 서울대의 항변에도 일리는 있다.
문제는 방향이 아니라 현실이다. 서울대의 평가기준에 맞추려면 학교는 아이들에게 지식 자체가 아니라, 지식이 생산되는 과정을 이해시키고, 지식에 대한 비판적 의견을 형성하도록 하며, 이를 논리적으로 풀어내도록 가르쳐야 한다. 그러나 우리 공교육의 현실은 이제야 조금씩 변화하고 있을 뿐이다. 현상태에서 그런 평가시스템을 들이댄다면, 아이들은 학교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서울대의 처지도 곤혹스럽다. 수능·내신 최상위 등급(2008년부터는 성적을 9개 등급으로 제공한다)의 학생만 지망할텐데, 무엇으로 이들을 선별할 것인가. 그럼에도 서울대는 더 고민해야 했다. 환자의 상태를 살펴가며 처방을 내놔야 하는데, 이번 계획은 공교육의 소생이 아니라 기진하게 할 우려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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