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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9.12 20:41 수정 : 2006.09.12 20:41

사설

민주노총을 뺀 노·사·정 대표자들이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 방안(로드맵)에 합의했다. 노동부 장관, 노사정위원회 위원장,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대한상의 회장, 한국노총 위원장 등 다섯 사람이다. 이들은 그제 ‘복수노조 허용’과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조항의 시행을 2009년 12월 말까지 3년간 더 늦추며, 직권중재 제도를 폐지하되 필수공익 사업장의 범위를 혈액공급, 항공, 폐·하수처리, 증기·온수공급업까지 확대하고 대체근로를 허용하기로 하는 등 32개 항에 합의했다.

이들은 선언문을 통해 이번 합의가 보편적 국제 노동기준과 우리 노사관계 현실을 함께 고려해 마련된 것이라며 “고심 끝에 내린 결단”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상수 노동부 장관은 노동계가 많은 양보를 했다고 평가했고, 정부 역시 경제발전을 위해 대승적 차원에서 양보하기로 결단했다고 밝혔다. 경총은 공식 입장을 통해 노·사·정이 한발씩 물러나 힘들게 대타협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규정했다.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은 “700만 내지 800만의 노동자가 혜택을 보는 큰 성과”라며 이번 합의가 후퇴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들의 이야기대로라면 이번 합의는 역사에 길이 남을 훌륭한 대타협이다. 그러나 그렇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다. 민주노총은 이번 합의를 “1500만 노동자를 기만하고 노동권을 유린하는 폭거”이며 절차적 정당성을 상실한 것이라고 규탄했다. 격분한 민주노총 간부들이 이용득 위원장에게 손찌검을 하자 한국노총은 공개적인 사과 등이 없을 경우 “민주노총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타도 대상으로 삼겠다”고 밝히는 등 노동계를 대표하는 두 단체 사이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노동삼권이 점차 확대돼가는 것은 역사의 순리다. 그런데 이번 합의에 참여한 사람들은 노동삼권이 점차 축소돼 가는 것이 역사의 순리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복수노조 설립이 유예되면 10% 남짓에 머무는 노동조합 조직률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은 요원한 꿈이 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설립하거나 어용노조가 지배하는 사업장에 건전한 새 노조를 만드는 것도 불가능해진다. 직권중재 제도를 없앤다고 하지만 대체근로를 가능하게 하면 필수공익 사업장의 노동삼권 보장은 후퇴할 수밖에 없다. 확대되는 필수공익 사업장이 대부분 민주노총 사업장이라는 것을 한국노총 위원장이 몰랐을 리는 없다. 민주노총한테는 회의 시간과 장소조차 알려주지 않았다는데, 그렇다면 이번 합의는 ‘야합’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경영계와 한국노총은 실리를 챙겼고, 정부는 노-정 관계 파국을 막는다는 핑계로 개혁을 포기했다. 노동부 장관은 경제부처 장관처럼 처신했으며, 한국노총 위원장은 노동계 전체의 뜻을 바르게 대변하지 못했다. 대표자가 되는 것도 어렵지만 대표자의 권리를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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