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저출산·고령화 대책 연석회의’에서 그제 국민연금 문제를 공식 의제로 채택했다. 정치권의 논의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사회협약 방식에 기반한 연금개혁 가능성을 연 이번 결정은 일단 반가운 일이다. 다수의 이해 관계자가 실질적으로 참여하는 사회협약 방식의 연금개혁이 정당이 주도하는 방식보다 개혁 결과에 대한 정치·사회적 수용성이 훨씬 높다. 이는 지난 20여년 연금개혁 문제로 몸살을 앓았던 서구의 경험에서 이미 검증된 것이다.연금개혁은 수십년 앞을 예측하는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사회과학적 검증 자체가 불가능하다. 특히 한국처럼 급속한 변화를 겪는 사회에서는 그 누구도 책임있는 정책 대안을 주장하기가 어렵다. 사회협약 방식은 미래에 대한 예측이 설사 잘못 돼도 협약에 서명한 주요 세력이 집단적 책임을 지기 때문에 문제를 수습하는 정치적 과정이 훨씬 매끄럽다. 정당 주도의 경우, 정권이 교체되면 제도가 수정돼 장기적으로 연금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책임 소재를 두고 정치적 갈등이 증폭될 개연성이 높다.
사회협약 기구의 결정을 국회와 정부가 어떻게 수용할 것이냐도 쟁점이 될 것이다. 연금개혁 방향에서 여야가 근본적인 견해 차이를 보이고 있는 상황인 만큼, 국회는 연석회의의 결론을 최대한 수렴하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복지부도 또 하나의 시어머니를 만났다는 사고방식으로는 연금개혁을 연착륙시키기 어렵다. 시민·노동사회를 설득하지 못한 연금개혁은 정치적 후유증이 심각할 뿐 아니라 제도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올해 안’이라는 시기에 연연하지 말고 연석회의와 보조를 맞추려는 전향적 자세가 필요하다.
연금문제의 해법을 놓고 주요 세력 사이에 상당한 시각차가 있어, 연석회의에서 합의된 결론이 나올 가능성을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1994년 ‘노령화 위기 극복’이라는 보고서를 내어 전세계 연금개혁에 파란을 몰고온 세계은행이 최근 “모든 국가에 적용되는 단일한 연금모델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언한 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교조적 주장에 얽매이지 않고 우리 경제와 인구 사회학적 특성을 반영한 모델을 사회적 합의 아래 만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국민연금의 궁극적 목적이 노후빈곤 예방에 있다는 근본 원칙을 포기하지 않는 선에서 사회적 대타협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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