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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9.15 20:16 수정 : 2006.09.15 20:16

사설

경찰청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한국전쟁 때 수많은 민간인 희생자를 낸 이른바 ‘국민보도연맹원 학살사건’의 중간조사 결과를 그제 발표했다. 과거사위는 당시 민간인 1만7716명이 적법절차 없이 처형당했고, 이 가운데 보도연맹원 3593명이 희생됐다고 밝혔다. 학살의 주체가 경찰과 국군이었다는 사실도 명확히 했다.

보도연맹은 1949년 이승만 정권이 좌익 활동을 한 사람들을 전향시키겠다며 만든 관변단체다. 그러나 전쟁이 터지자 경찰과 군, 우익단체들은 전국 곳곳에서 예비검속을 한다며 이들을 잡아다 무참히 살해했다. 유족들은 이후 억울한 죽음을 신원하기는커녕 평생을 빨갱이란 멍에를 지고 살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런 반인륜적 집단학살 범죄를 ‘전쟁통에 일어난 일’로 묻어왔고, 유족과 목격자들의 피맺힌 증언으로만 구술돼 왔다. 반세기가 지나서야 사건의 성격을 ‘국가에 의한 민간인 학살’로 규정하고 경찰이 공식 사과한 것은 만시지탄이다.

이번에 밝혀진 희생자 규모는 공식 기록이나 자료가 남아 있는 것만을 취합한 것이다. 보도연맹 가입자는 최대 33만명으로 추정된다. 어느날 소리 없이 끌려가 아무런 기록도 없이 희생된 이들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희생자 유족 일부는 지난해 출범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에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신청했다. 이번 조사 결과를 토대로, 학살의 실체적 진실을 드러내기 위한 지속적인 자료 발굴과 분석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독일은 지금도 수많은 연구자를 동원해 단순한 나치 동조자의 행적까지 추적·조사하고 있다. 범죄자로 처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억압적 통치와 전쟁이 빚은 일상의 비극을 온전히 후대에 전하고자 함이다.

보도연맹 사건은 국가권력이 이념의 굴레를 씌워 제나라 국민을 살해한 범죄이자 좌우 대립이 빚은 현대사의 비극이기도 하다.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것은 아픔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는 최소한의 요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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