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9.15 20:15
수정 : 2006.09.15 20:15
사설
고려대 문과대 교수들이 어제 “무차별적 시장논리와 효율성에 대한 맹신으로 인문학은 그 존립 근거와 토대마저 위협받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는 내용의 선언문을 발표했다. 그동안 인문학의 위기를 지적하는 소리는 많았지만, 공동성명은 처음이라니 인문학도들이 느끼는 위기감이 실감난다.
선언 내용대로 대학가에 덮친 신자유주의의 해일은 우선 대학을 상업화했다. 대학은 자본에 봉사하는 인력 양성소 혹은 이윤 창출 기업으로 바뀌었다. 비판적 지성의 산실이라는 대학 존립이유는 허울뿐이다. 정부의 인문학 분야 지원은 연구개발 예산의 0.73%에 불과하다. 지원은 실용학문에만 집중되고, 대학총장은 재벌에 굽실거린다. 학생들이 실용학과로 몰리고, 인문학과는 퇴출 위기로 내몰린다. 문학 역사 철학 물리 수학 생물 화학 등 기초학문은 수강생 부족으로 잇따라 폐강되고 있다.
인문학은 인간의 가치와 삶의 의미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이런 인간 이해를 토대로 응용 분야의 연구는 진행된다. 인문학이 학문의 지하수에 비교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지하수가 고갈되면 지상의 생명은 말라죽게 된다. 인문학의 인간 이해는 도덕이나 규범 등 학문과 사회의 운영원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런 도덕과 규범이 퇴조하면서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자본과 권력의 논리다. 이것이 초래하는 부작용은 심각하다. 윤리적 통제에서 벗어난 과학기술은 인간에게 행복 대신 불행, 평화 대신 폭력를 가져온다. 황우석 사태는 그 좋은 실례다.
우리 사회는 이런 물음에 답할 줄 알아야 한다. “…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김수영, ‘푸른 하늘을’) 시인은 그 앞에 이렇게 썼다. “자유를 위하여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은 안다.” 그런 사람의 자세를 우리는 인문학적 소양 혹은 비판적 지성이라고 말한다. 그것만이 권력과 자본, 기술에 종속되지 않는 자유와 평화의 공동체를 이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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