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일본에 새로운 정치실험이 시작됐다. 어제 치러진 집권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예상대로 압승을 거둔 아베 신조 관방장관은 26일 소집되는 의회에서 총리로 선출된다. 북한의 일본인 납치에 강경대응을 주도하며 할 말을 하는 정치인이라는 이미지 조성에 성공하면서 지도자로 급부상한 그의 등극이 신선한 세대교체 의미를 띠는 일임은 분명하다. 오늘 쉰두번째 생일을 맞은 그는 전후 태생의 첫 총리이자 최연소 총리가 된다.그가 가져올 변화는 정계의 단순한 세대교체가 아니다. 패기와 압도적 지지세를 바탕으로 2차대전 패전 뒤 일본의 번영과 안정을 이루는 데 기여한 전후 민주주의의 뼈대를 근본부터 허물려는 구상을 밀어붙일 것으로 예상된다. 그가 핵심공약으로 내거는 과제는 평화헌법 개정과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교육개혁’이다. 일본 정치의 타성과 정체, 유유부단 풍조에 지친 국민들이 그에게 일정한 기대를 거는 것은 이해가 가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그가 이런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역량과 자질을 갖췄냐는 데는 일본 안에서도 의구심이 있다. 일본 중의원에서 5선 의원은 중진급에 끼지도 못한다. 총리의 비서실장과 대변인 구실을 하는 관방장관을 제외하면 크든 작든 한 부처의 장을 한 경험조차 없다.
더욱 걱정되는 것은 그의 역사인식이다. 그에게 맡겨진 최우선 과제의 하나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강행으로 무너진 이웃나라들과의 관계 회복이다. 하지만 총재경선 토론 과정에서 나온 발언을 보면 한국·중국과의 정상회담 복원이 지뢰밭 길이 될 것임을 예감케 한다. 고이즈미 총리는 야스쿠니 참배를 합리화하는 강변을 펴기는 했지만, 침략전쟁을 단죄한 도쿄군사재판의 정당성이나 에이(A)급 전범 문제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반면에 아베 장관은 역사가의 판단에 맡기자거나 모호한 말로 논란을 비켜가는 회피수법을 애용해 왔다. 총리 취임 뒤에도 이런 수법을 고수한다면 국제사회에서 논란이 수그러들 리가 없다.
파문을 줄이고 새로운 선린관계를 쌓아가려면 무엇보다도 그가 유연하게 처신하고 합리적인 발언을 해야 한다. 그가 평소 지론을 되풀이하면 동아시아 외교무대는 고이즈미 시대보다 더욱 험한 시련기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아베 정권이 나중에 ‘전후 부정 내각’, ‘국수주의 내각’으로 기록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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