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9.20 20:53
수정 : 2006.09.20 21:50
사설
헌법재판소장의 공백 사태가 장기화하고 있다. 헌재는 어제 주선회 재판관을 소장 대행으로 선출하고, 다음달부터 평의를 열어 위헌법률 심판 사건 등의 심리 절차를 진행하기로 했다. 7인 이상이면 심리는 가능하다. 그러나 위헌 심판이나 탄핵, 정당 해산 등 주요 결정은 재판관 6인 이상의 찬성을 요구하기 때문에 주요한 사안은 재판관이 모두 채워질 때까지 결정이 미뤄질 수밖에 없다. 하루 빨리 헌재소장 임명 절차가 마무리돼야 하는 까닭이다.
그동안 헌재소장 임명이 늦어진 것은 주로 절차에 관한 법적 논란 때문이다. 헌법학자 사이에도 “재판관 중에서 헌법재판소장을 임명해야 한다”는 의견과 “재판소장 임명에는 재판관이 당연히 포함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견해로 갈린다. 최고 헌법기관의 장을 뽑는 절차를 명확히 한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헌법 논쟁이었다. 이 과정에서 국회법과 인사청문회법에 재판관과 헌법재판소장에 대한 청문회 규정을 각각 따로 규정하는 등 내용적으로 모순되는 부분이 있는 것이 발견되는 성과도 있었다.
오랜 진통 끝에 청와대가 어제 법사위에 내기로 한 ‘전효숙 헌법재판관 인사청문 요청서’는 헌법과 국회법상의 절차 논란을 치유하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세 야당의 핵심 요구사항을 수용한 것인데다 법적 규정을 따른 것으로서 절차상 논란을 정리하는 주요한 계기가 성립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제 청문회를 다시 하든지 아니면 지난번 청문회로 갈음하든지 합의해서 처리하는 일이 국회의 과제가 됐다.
문제는 한나라당이다. 한나라당은 처음에는 절차를 문제삼다가 최근에는 절차가 갖춰지더라도 ‘전효숙씨는 코드 인사이기 때문에 어쨌든 안 된다’며 막무가내식으로 반대하는 경향을 보여 왔기 때문이다. 이는 수권 정당을 지향하는 책임있는 정당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절차 문제가 해결될 가닥이 잡혔으면 후보자의 자질을 따져 찬반 견해를 당당하게 밝히면 될 일이다. 논의 자체를 막는 무조건 반대는 적절하지 않다.
지금과 같은 태도가 계속되면 한나라당이 헌재를 길들이려는 다른 정치적 목적을 가진 게 아니냐는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 문성현 민주노동당 대표는 “정치적 독선과 아집에 관한 한 한나라당이 청와대보다 한수 위”라고 말했다. 생산적인 정치를 위해 한나라당이 곰곰이 따져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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