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용훈 대법원장이 최근 지방법원을 순회하면서 한 일련의 발언이 법조계에 큰 파문을 낳고 있다. “대법원장이 검찰과 변호사를 비하했다”며, 대한변호사협회는 대법원장의 자진 사퇴를 요구했고, 검찰총장이 공식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다.문제의 발언은 대법원장이 판사들한테 구술 중심, 공판 중심의 재판을 독려하는 훈시에서 나왔다. 전체적인 발언 취지는 검사나 변호사가 제출한 기록에만 의존하는 안이한 재판 관행을 질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몇몇 대목은 사법부 수장으로서 적절한 발언으로 보기 어렵다. ‘검찰과 변호사는 (법원의) 보조 기관’, ‘수사기록을 던져 버리라’, ‘변호사 자료는 상대방을 속이려는 문서’ 등이 그것이다. 검찰과 변호사 단체들도 이 대목을 문제 삼는 것이다. 거칠고 직설적일 뿐 아니라, 헌법과 법률이 정한 검찰과 변호사의 기능과 구실을 무시하는 듯한 발언으로 비칠 소지도 충분하다.
이 대법원장 스스로 “재판은 국민의 이름으로 하는 것이지 판사의 이름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법원 역시 국민들한테 위임받은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다. 검찰과 변호사는 모두 공판의 중요한 당사자다. 최종 심판자인 법관의 중요성은 재론할 필요가 없지만, 그렇다고 공판 중심주의가 곧 ‘법원 만능주의’로 흘러선 안 될 것이다. 사법부의 신뢰 회복과 개혁은 충격 요법으로 일시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수사기록을 내던지기 전에 수사기록을 꼼꼼히 읽는 법관이 절실하다는 충고가 설득력 있다.
그러나 몇몇 어구와 직설적 화법을 이유로 본질을 왜곡하거나 비켜가선 안 된다. 공판 중심주의는 우리 사법 시스템이 지향해야 할 개혁 방향이라는 점에 이견을 다는 이는 없다. 공정하고 투명한 재판을 통해 사법부의 신뢰를 높이는 것도 시급한 과제임이 틀림없다. 발언의 진의에 눈감은 채,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봐선 안 된다.
이런 점에서 변호사회가 몇몇 표현을 문제삼아 “사법부의 질서를 근본적으로 부인하는 발언”이라고 침소봉대하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대법원장이 지적한 검찰의 밀실·강압 수사, 별건 구속 수사, 진술 중심 수사 관행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조서와 영장에 의존한 구태의연한 수사 관행을 언제까지 붙들고 있을 순 없다. 검찰 역시 유감 표명에 앞서 곰곰이 되새겨야 할 대목이다.
더욱 볼썽사나운 건 이번 발언이 이른바 ‘법조 삼륜’의 자존심과 권한 싸움으로 번진 것이다. 법조비리 사건 이후 법원과 검찰, 변호사 단체가 앞다퉈 자정 대책을 내놓은 게 엊그제다. 국민 눈에 어떻게 비칠지 법조계 전체가 되돌아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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