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9.21 20:59
수정 : 2006.09.21 20:59
사설
1980년 삼청교육대의 가혹행위에 맞서고 보호감호법 철폐를 주장하다가 청송감호소 교도관들에게 맞아 숨진 박영두씨 사건 공판에서 배상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등법원은 그제 국가의 반인권적 행위로 피해를 봤다면 손해배상 청구 시효가 지났더라도 배상해야 한다며 박씨 유족에게 2억3천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지난 2월 유신정권 아래서 의문사한 최종길 서울대 법대 교수 유족에게 배상하라는 판결과 같은 맥락의 결정이다. 정부 기관에서 권리 남용에 해당하는 일을 저질렀을 때는 시효를 이유로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게 판결의 취지다.
이번 판결은 최 교수 사건과 마찬가지로, 반인권적 국가범죄에는 시효가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환기시킨다. 그리고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반인권적 국가범죄의 공소시효 등에 관한 특례법안’의 조속한 처리 필요성도 함께 제기한다. 지난해 9월 제출된 이 법안은 1년이 넘도록 처리되지 못한 채 서서히 잊혀져 가고 있다.
박씨 사건은 여느 민주화 사건과는 또다른 의미도 담고 있다. 박씨는 세 번의 전과가 빌미가 되어 삼청교육대에 끌려갔다. 전두환 정권의 극악무도한 폭력 앞에 많은 사람이 숨죽이고 있던 당시, 그는 동료들과 함께 부당한 폭력에 집단행동으로 맞섰다. 청송감호소로 이송된 뒤에도 그는 폭력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2001년 의문사진상규명위에서 이 사건을 민주화 운동으로 규정하자 ‘흉악범이 무슨 민주 투사냐’는 식의 비난이 쏟아졌다. 이런 저급한 인식은 비단 지나간 사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지금도 단지 범죄자이거나 전과자라는 이유로 인권을 침해당하는 일들이 곳곳에서 벌어진다. 박씨의 민주화 운동을 기억하는 것은, 지금 우리 곁에서 차별과 폭력에 신음하는 이들을 돌아보는 일로 이어져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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