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9.22 20:46
수정 : 2006.09.22 20:46
사설
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이 2001년의 9·11 직후 미국의 위협을 받은 사실을 밝혔다. 무샤라프 대통령은 24일 방영될 〈시비에스〉(CBS) ‘60분’ 프로그램에 나와 리처드 아미티지 당시 미국 국무부 부장관이 파키스탄 정보국장에게 대테러 전쟁에 협력하지 않으면 “폭격당할 각오를 하라, 석기시대로 돌아갈 각오를 하라”고 위협한 사실을 공개했다고 한다. 아미티지 전 부장관은 이에 대해 구체적인 표현에는 차이가 있었지만 발언 강도가 셌다는 점은 인정함으로써 협박이 있었음을 부인하지 않았다고 이 방송은 전했다. 무샤라프는 “아미티지가 ‘미국에 대한 테러를 지지하는 의견을 억눌러 달라’는 ‘웃기는’ 주문까지 했다”고 증언했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19일 유엔 연설에서 유엔헌장 1조를 거론하며 “모든 인간의 평등하고 양도할 수 없는 권리가 세계의 자유와 정의와 평화의 기반”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무샤라프의 이런 증언은 미국이 말하는 ‘자유·정의·평등·평화’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미국의 일방적인 요구에 따르지 않으면, 자유니 평화니 평등이니 하는 것은 모두 헛소리일 뿐인 것이다.
국제관계에서 힘이 정의라는 사실이 새삼스런 이야기는 아니다. 또 최근의 역사만 보더라도 이라크 침공을 위시해 미국의 일방주의적 독선의 예를 꼽자면 열손가락을 갖고도 모자란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 등장 이후 미국의 대외정책을 주물러 온 네오콘들의 안하무인격인 행태는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 네오콘들의 이런 오만한 행태가 유엔 총회에서 미국을 비판하는 게 하나의 유행이 됐다는 〈월스트리트저널〉 보도의 배경에 있다. 미국은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나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 등 미국에 직격탄을 날리는 외국 지도자들을 예외적 사례로 보고 싶겠지만 그들이 “많은 다른 나라 지도자들이 표현만 안 할 뿐, 공유하는 생각을 대변하고 있다”는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부시 대통령은 유엔 연설에서 중동지역 민주화를 위해 온건개혁파를 지지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미국의 극단주의적·일방주의적 대외정책으로 온건세력의 입지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게 현실이다. 미국이 진정 민주적인 세계를 원한다면 하루 빨리 일방주의를 벗고 도덕적 권위를 회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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