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9.26 18:28
수정 : 2006.09.26 18:28
사설
어제 출범한 아베 신조 내각이 그려갈 일본의 진로에 쏠리는 안팎의 관심이 그 어느때보다도 높다. 전후 태생의 첫 총리이자 50대 초반의 아베가 단행한 집권 자민당의 수뇌부 인사와 조각의 면면을 보면 과거사 인식을 둘러싼 일본과 이웃나라들의 분쟁이 쉽게 수그러들 것 같지 않다. 구조화·상례화될 가능성이 높아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선다. 제국주의 시대에 식민지나 점령지의 여성을 성노예로 삼았던 군대위안부 제도의 존재나 강제성을 대놓고 부인했던 강경 우파 정치인들이 요소에 기용됐다.
더 큰 문제는 아베 총리의 역사인식이나 세계관이 측근이나 핵심참모들보다 국수주의적 색채가 조금도 덜하지 않다는 점이다. 집안 내력을 일부러 꼬투리잡을 것은 아니지만 아베의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는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공격한 도조 히데키 개전 내각의 상공상으로 선전포고 문서에 서명을 했던 인물이다. 1950년대 후반 총리 재직 시절 점령군이 강요한 평화헌법을 폐기하고 ‘자주헌법’ 제정을 숙원으로 삼았던 할아버지의 미완의 꿈을 이제 아베가 실현하겠다고 나섰다. 내각이나 총리 보좌관에 대북 강경파들이 줄줄이 포진한 것도 남북대화의 장래나 동북아의 긴장완화 측면에서 우려스런 대목이다.
아베 정권이 시급히 해결해야 할 대외적 과제는 고이즈미 전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무너진 한국, 중국과의 정상외교 통로 복원이다. 아베의 측근들은 외교 채널 등을 통해 이웃나라들과 물밑 접촉을 활발하게 벌인다고 한다. 상견례를 겸한 회동의 첫 무대로 오는 11월18~19일 하노이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아펙)가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한-일 수뇌회담의 정상화 방안을 놓고 국내에서도 논란이 있다. 일본에 새 총리가 들어섰으니 노무현 대통령이 일단 만나서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해보자는 주장에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큰틀을 정리해놓고 만나지 않으면 오히려 화만 키울 수가 있다. 아베는 총리에 오르기 전 야스쿠니 참배 여부 등 역사인식 문제에 아예 답변을 하지 않거나 얼버무리는 전술로 일관했다. 아베가 이웃나라들과의 관계 개선을 진심으로 원한다면 분명하게 자신의 생각을 밝혀야 한다. 대국의 총리가 도망가듯 모호한 태도를 보인다면 신뢰쌓기는 대단히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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