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9.27 18:29
수정 : 2006.09.27 18:29
사설
비공개로 진행되던 형사사법 전산망 통합 작업이 그제 국회에서 열린 공청회를 계기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 작업은 경찰과 검찰의 형사사건 관련 문서들을 모두 전자화해 정부 기관들이 공유하는 내용이다. 경찰에서 참고인 조사만 받아도, 그 내용을 검찰과 법원은 물론, 국가정보원·노동부·국세청까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개인정보의 유출과 악용 가능성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두렵다. 개인정보가 단돈 몇푼에 팔려나가는 게 우리 현실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문서를 이중 삼중으로 작성하고 관리하는 비효율을 줄임으로써 예산을 절감하고 업무를 신속히 처리하려는 목적이라고 주장한다. 일리가 있다. 전산망의 통합이 효율을 높인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거의 없다. 다만 효율이 어느 정도인지는 다른 문제다. 또 효율이 아무리 높아도 개인정보 유출과 악용에 따른 피해를 정당화할 순 없다. 냉정하게 효율과 위험성을 따져야 한다. 그리고 이 둘을 저울질하는 데서 최우선으로 삼을 원칙이 있다. 우리보다 인권의식이 앞선 유럽 등에서는 ‘민감한 정보는 가능한 한 한군데 모으지 않는다’는 게 상식으로 인정된다. 쉽게 말해 ‘달걀을 한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것이다. 약간의 효율 향상보다는 개인정보 보호가 우선이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우리의 형사사법 전산망 통합 추진 과정을 보면 이런 원칙을 말하는 것조차 민망하다. 정부가 2004년 12월 사업추진단을 꾸리고 일을 추진해 왔지만, 지금까지 사업 내용은 거의 공개되지 않았다. 심지어 이 문제를 계속 주시해 온 정보인권 단체들이 사업의 기초 정보를 입수한 게 기껏 한두 달 전 일이다. 이 사업이 과연 필요한지, 효율성이 높은지 위험성이 큰지, 지금 상황에선 객관적인 검증이 불가능하다.
게다가 이 사업에는 검찰과 경찰의 관계 문제까지 얽혀 있다. 통합 작업이 끝나면 검-경의 수사권 조정 논란은 쓸데없는 일이 된다. 검찰이 경찰의 모든 자료를 볼 수 있다면, 경찰의 독립성을 논하는 건 무의미하다. 법원이 자체 전산망을 계속 유지하기로 한 것도 독립성 때문이다. 이렇듯 형사사법 전산망 통합은 단순 업무효율 개선 작업이 아니다. 이제부터 총체적이고 종합적인 관점에서 사업을 완전히 새로 검토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