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어제 동북아역사재단이 출범했다. 중국의 동북공정, 일본의 교과서 왜곡과 독도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자 만든 기구다. 그동안 중국이나 일본은 이런 작업을 장기적 계획 아래 민간 학술기구나 단체를 통해 진행시켜 왔다. 물론 형식만 민간 주도였지, 내용은 정부나 정치권 주도였다. 때문에 조용한 외교, 혹은 학문적 방식으로 대처하려 했던 우리 정부는 번번이 낭패를 당했다.반관반민 성격의 동북아역사재단 설립은 이런 주변국의 변칙적 역사 왜곡과 영토 분쟁 도발 조짐에 맞서 민간 학술단체와 정부가 공동 대응하기로 한 결과다. 우리마저 역사 문제를 정치적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되는 현실이 안타깝지만, 그만큼 동북아의 상황은 심각하다. 설립 목적으로, 동북아 역사의 체계적인 연구와 전략적인 정책 개발을 통해 바른 역사를 수립하고, 동북아의 평화 및 번영의 기반을 마련한다고 적시한 것은 이런 상황인식과 안타까움을 담은 것이다.
문제는 재단이 학문 연구와 정책 개발이라는 충돌하기 쉬운 두 목표를 어떻게 조화시키느냐다. 재단은 원칙적으로 주변국의 사이비 민간단체처럼 미리 정치적 목표를 정하고 이를 합리화하는데 학문을 동원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재단의 구조는 정치가 학문적 연구를 이끌어가기 쉽도록 돼 있어 우려된다. 연구보다는 정책 및 전략 수립, 대외협력과 홍보를 중시하기 쉬운 구조인 것이다. 예산은 모두 국고에서 지원된다. 이사진 역시 교육부 장관의 제청이나 외교부 장관의 협의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연구의 독립성이 인정되더라도 인사와 예산을 틀어쥔 정부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힘든 형편이다.
정치는 여론에 민감하다. 여론에 따라 정책적 목표가 설정되고 강요될 수 있다. 학문적 연구가 여론에 좌우된다면 재단은 파국을 피하기 어렵다. 게다가 여론은 맹목적 민족주의나 국수주의로 흐르기 일쑤다. 따라서 정부는 연구와 정책 수립에 개입해선 안 된다. 나아가 여론이나 정치권의 요청과 공격으로부터 재단을 보호해야 한다. 또한 재단은 충분한 연구 실적을 축적해 세계 학계로부터 인정받고, 주변국 학계와 교류를 통해 학문적으로 설득해나갈 수 있어야 한다. 재단은 비록 정치적 요청으로 출범했지만, 역사분쟁을 매듭짓는 방식은 학문적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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