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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0.13 20:28 수정 : 2006.10.13 20:28

사설

히틀러는 유대인 학살을 독려하며 이렇게 말했다. “누가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을 기억하던가?” 히틀러의 말대로 대학살은, 터키를 경원하고 견제하는 아르메니아나 유럽의 주장쯤으로 기억될 뿐이다. 터키는 그만큼 철저하게 이 사건을 지워버렸다. 이에 대한 언급은 국가 정체성 모독죄에 해당한다.

진실은 터키의 소설가 오르한 파묵이 복원했다. 그는 지난해 2월 “1915년 터키에서 쿠르드인 3만여명, 아르메니아인 100만여명이 살해됐다. 그러나 아무도 이 사실을 얘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고발당했지만, 그의 고백은 양심을 깨웠다. 주간지 <아고스>가 이와 관련한 기사를 실었다가 편집장이 기소됐고, 작가 자라골루는 <아르메니아 의사의 경험>을 번역 출판했다가 처벌당했다.

1915년 4월24일 러시아의 공격으로 동부전선이 흔들리던 오스만 제국은 자국내 아르메니아계 지도자와 지식인 325명을 전격적으로 처형했다. 이것은 200만여명의 아르메니아인에 대한 인종청소를 알리는 것이었다. 정교를 믿던 아르메니아인들이 러시아에 동조해 반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18살부터 50살까지 남자는 집단으로 처형하고 노약자와 부녀자들은 메소포타미아 사막으로 추방해 굶어죽게 했다. 20세기 야만의 인종청소와 학살의 역사는 이와 함께 시작됐다.

바로 그 파묵이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뽑혔다. 이미 작가적 역량은 세계인에게 널리 알려졌던 터였다. 지난해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히기도 했다. 고난의 역사 속에서 문학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왔던 한국의 문인들을 올해도 비켜간 것은 서운한 일이다. 그러나 조국이 저지른 대학살을 고발한 양심한테 상이 돌아간 것은 우리도 환영할 일이다. 우리는 침략과 학살, 인권 유린으로 점철된 역사를 살아 왔다. 이웃 일본은 침략과 학살의 역사를 반성하지 않는다. 파묵의 수상이 잠자는 양심을 깨우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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