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10.22 22:10
수정 : 2006.10.22 22:10
사설
최규하 전 대통령이 어제 타계했다. 그는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암살 직후부터 80년 8월까지 대한민국 현대사의 혼돈기에 청와대 주인으로 있던 인물이다. 그의 재임 기간은 12·12 군사반란과 5·18 광주학살을 자행한 전두환·노태우씨 등 신군부의 폭력이 난무한 시기였다. 최 전 대통령은 신군부의 위압에 눌려 자신의 뜻을 제대로 펴보지 못했고, 광주 학살이라는 우리 현대사의 비극을 막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비운의 대통령’으로 기억된다.
79년 10월26일 박 전 대통령 암살 당시 국무총리였던 그는 곧바로 대통령 권한대행에 올랐고 12월6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에 선출됐다. 하지만 엿새 뒤 12·12 군사반란이 일어나면서 최 대통령의 운명은 험난해졌다. 그는 오랜 독재에 시달리던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을 모아 새로운 역사를 열 기회를 그냥 보냈고, 5·18 학살 이후엔 더 이상 그에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대통령직 사임 이후 그는 자신의 재임 기간 벌어졌던 일들에 대해 일체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1996년 12·12와 5·18 사건 재판에 강제 구인되어서도 증언을 거부했다. 그는 법정에서 “전직 대통령이 재임 중 수행한 국정행위에 대해 후일 일일이 소명이나 증언을 해야 한다면 국가경영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말로 증언을 대신했다. 그는 이런 뜻을 끝까지 지켰다.
최 전 대통령 재임 중 벌어진 사건들의 진상이 온전히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그를 단정적으로 평가하는 건 섣부르다. 그렇다 해도 역사와 개인의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역사의 흐름은 너무나 도도해서 한 개인이 그 흐름을 막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민중의 뜨거운 열망이 뒷받침될 때라면 한 개인의 용기있는 행동이 흐름을 바꾸기도 한다는 걸 역사는 증명한다. 최 전 대통령에게 이런 용기와 역사인식이 있었다면 우리 현대사는 지금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결정적인 국면에 행동하지 못한 것과, 겸허한 자세로 역사를 대면하지 않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용기 없음은 안타까운 일일 뿐이지만, 역사를 외면하는 건 반복되지 말아야 할 일이다. 역사 앞에 끝내 침묵하는 대통령이 다시 나오지 않게 하는 것은 최 전 대통령에 대한 마지막 예우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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