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고달픈 서민들한테 법의 정의는 여전히 먼 얘기다. 누구보다 법의 보호가 절실하지만, 현실의 법과 제도는 전혀 든든한 울타리가 되지 못하는 탓이다. <한겨레>는 최근 참여연대와 함께 갈수록 피폐해지는 서민경제의 고달픈 현실을 기획보도했다. 돈없고 집없는 서민들의 삶을 더욱 옥죄는 것이 다름 아닌 ‘서민 울리는 법’에 있음을 고발했다.정부가 합법화한 고리의 사채는 한번 빚더미에 나앉으면 좀처럼 헤어날 수 없는 악순환을 낳았고, 돈도 신용도 없는 이들은 가족과 친인척의 연쇄 파산으로 재기의 싹마저 짓밟히고 있다. 참여정부가 서민주거 안정을 위해 늘려놓은 임대아파트는 높은 임대료 부담 때문에 정작 영세 서민들한테는 줘도 못 사는 그림의 떡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법정 이자율을 제한하고(이자제한법 부활), 임대 보증금을 현실에 맞게 책정하자(임대주택법 개정안)는 입법청원과 법률안은 몇 해째 감감 무소식이다.
이번주 국정감사가 마무리되면 정기국회가 본격적 단계에 들어간다. 국감마저 북한 핵실험 파문에 온통 묻혀 버린 마당이니 ‘민생 국회’ 바람은 더 멀어진 듯하다. 정개개편에만 매달리고 있는 여당이나 정권 때리기가 유일한 당론인 거대 야당의 현실을 보면 더욱 그렇다.
연말 국회는 예산안 처리 등 일정이 촉박하다. 특히 형사소송법 등 사법개혁 관련 법안, 비정규직 등 노사관계 관련 법안, 국민연금과 관련된 국민기초생활 보장법 등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민감하고 굵직한 현안들도 여럿 있다. 전례를 보면 여야 사이에 별 이견이 없는데도 쟁점 법안들과 도매금으로 묶여 연기·폐기된 민생법안들이 적지 않았다. 예컨대 이자제한법 부활은 현직 국회의원 33%가 찬성 의견을 냈고(참여연대 조사), 보증 최고액을 제한하는 개정안은 관련 부처에서 오래 전부터 추진해 온 것이다. 이번 정기국회만큼은 여·야가 이런 법안을 쟁점 법안과 따로 떼어내 우선 처리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이번 국회는 참여정부 들어 켜켜이 쌓인 민생 법안을 처리할 사실상 마지막 기회다. 여든 야든 정치적 거래를 목적으로 민생 법안을 연계하는 행위를 더는 반복해선 안 된다. 말로는 ‘서민경제 파탄’을 입버릇처럼 들먹이면서 정치 공방으로 날을 세운다면 정치에 대한 희망을 거론할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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