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기업으로 경제력 집중이 방치할 수 없는 상황까지 왔다. 공정거래위원회가 2004년 출하액 기준 50대 기업의 시장집중도를 조사한 결과, 광공업 전체의 39.7%에 이르렀다. 전년도보다 1.9%포인트 높아졌을 뿐 아니라 통계가 나와있는 81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10대 기업으로만 따져도 24.6%가 된다.몇몇 기업으로의 경제력 집중이 새삼스러운 얘기는 아니다. 재벌기업의 문어발식 확장과 몸집 불리기는 오래 전부터 문제로 지적돼왔고, 이들의 중복·과잉 투자는 외환위기의 원인 가운데 하나였다. 걱정스러운 것은 외환위기 이후 중소·벤처 기업 육성, 금융과 산업의 분리, 출자총액제한제 부활 등 경제력 집중을 막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실행하고 있음에도 집중도가 심화된다는 점이다.
경제력 집중은 결국 산업별 독과점을 야기하고 소비자의 이익을 침해하게 된다. 나아가 유망한 중소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다. 공정위가 지난 4월 발표한 대규모 기업집단 순위를 보면 30대 그룹에서 새 얼굴을 찾아보기 힘들다. 순위의 변동은 있을지라도 10년, 20년 전에 봤던 그 기업들이다. 한국에서는 왜 마이크로소프트나 구글처럼 성장성 있는 신흥 대기업이 나오지 않는 것일까? 재벌그룹의 계열사를 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삼성 59개, 현대차 40개, 에스케이 56개, 엘지 30개, 롯데 43개…. 상호출자제한 59개 그룹의 계열사는 무려 1116개에 이른다. 재벌기업들, 특히 4대그룹이나 10대그룹으로의 경제력 집중은 우려할 만한 상황이다. 이들은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국민들이 사용하는 거의 모든 제품을 생산, 판매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공정한 경쟁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공생은 더욱 어렵다.
경제력 집중의 폐해는 기업들의 경영실적에서도 잘 나타난다. 외환위기 이후 재벌기업들의 경영실적은 크게 좋아졌지만 중소기업들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재벌기업의 시장지배력이 강화되면서 중소기업들이 단순한 하청공장으로 전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경쟁을 위해 독과점 사업자의 출현이 불가피하다 해도 그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경쟁의 원리가 작동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를 통해 창의적이고 유망한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해가야 한다. 그것이 장기적으로 우리 사회의 성장잠재력을 확충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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