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6.11.05 21:56 수정 : 2006.11.05 21:56

간첩 누명을 쓰고 16년 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한 함주명씨와 가족들한테 법원이 엊그제 “국가는 14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지난해 재심 무죄 판결에 이어 손해배상 소송에서도 국가의 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이번에도 재판부는 국가기관이 저지른 반인륜적 불법행위의 민사상 소멸시효를 인정하지 않았다. 앞서 수지김과 최종길 교수 유족들도 같은 근거로 국가배상 판결을 받았다. 국가가 시효의 장막에 숨어 배상 책임을 면할 순 없다는 전향적인 판례가 더욱 확고해지길 기대한다.

그러나 군사독재 시절 자행된 수많은 인권유린과 고문·조작 사건 피해자들이 사법적 진실과 명예를 되찾고 정당한 배상을 받는 길은 여전히 멀고 험하다. 민주화 운동이나 대형 시국사건 관련자들은 특별법 등을 통해 불완전하나마 명예회복의 길이 트였지만, 함씨처럼 평범한 농사꾼이나 선원에서 하루아침에 간첩 누명을 쓰고 십수년 옥살이를 한 이들은 사회적 관심조차 받지 못했다. 제발 억울한 누명만이라도 벗겨달라며 인권·시민 단체들을 통해 재심을 기다리는 고문·조작 간첩만도 100여건에 이른다.

하지만 발걸음은 한없이 더디다. 국가기관의 과거사 고백은 재심의 근거가 되는 새로운 증거와는 거리가 멀고, 법원은 법적 안정성을 들어 턱없이 까다로운 재심 기준을 고수하고 있다. 재심 요건을 완화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과 반인륜적 국가범죄의 공소·소멸 시효를 배제하는 각종 입법안은 국회의 관심에서 사라진지 오래고, 지난해 출범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조사·제재 권한이 크게 축소돼 손발 없는 기록 기관으로 쪼그라들 처지에 놓였다. 지금도 실체가 모호한 ‘간첩’ 의혹에 온갖 정치적 색깔 공세가 난무하는 세상 아닌가. 이런 식이라면 고문·조작 사건 피해자들의 피맺힌 절규는 또다시 역사 속에 묻힐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현실적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대법원은 독재정권 시절 잘못된 공안·시국 사건 판결을 바로잡겠다고 밝힌 바 있다. 얼마 전 이용훈 대법원장은 재심 판결문에 법원의 잘못을 명시하겠다고 공언했다. 최근의 잇단 국가배상 판결에서 보듯, 중요한 건 법원의 전향적인 자세다. 법원 안에 재심 특별재판부를 설치하는 등 법적 안정성을 해치지 않는 다양한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