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11.06 18:58
수정 : 2006.11.06 18:58
사설
미국 대학원 진학용 영어시험(GRE)을 보려고 일본 같은 이웃 나라까지 가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국내에서는 일년에 두 번밖에 응시 기회가 없기 때문이란다. 미국 대학 입학에 필수적인 토플시험을 치르려는 학생들도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응시자가 한 해 10만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지만 시험장은 턱없이 부족한 탓이다.
영어 공부 등을 위해 외국으로 나가는 학생들이 크게 늘면서 국가 전체적 비용 부담이 만만찮다. 올해 초부터 지난 9월까지 국외 유학·연수에 쓰인 돈이 33억달러에 이른다. 그런데 유학에 필요한 ‘지아르이’ 시험까지 외국에 가서 치러야 하는 상황이라니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이를 보러 일본에 가는 여행비만 한 명에 40만원이라고 한다.
이런 상황이 초래된 것은 시험 기출 문제 유출 때문이다. 미국의 대학원들에서 한국을 비롯한 몇몇 나라 학생들의 시험점수가 실제 실력에 비해 너무 높은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자, 시험 주관기관이 실태 조사를 벌여 2002년부터 시험 횟수를 제한하고 있다. 시험 문제 또한 몇몇 나라용으로 따로 만든다고 한다. 국내의 시험 대행기관 관계자는 “일본 등에 가서 시험을 치르는 걸 미국에서도 알지만 제한을 풀면 똑같은 부정이 반복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고 말한다. 무슨 수를 쓰든 점수만 높이면 그만이라는 점수 만능주의가 빚은 사태인 셈이다. 그러니 떳떳하게 시험 횟수를 늘려달라고 주장하기도 민망한 지경이다.
한편, 토플시험 때문에 겪는 불편은 미국 시험 주관기관에 책임이 있다. 세계에서 응시자가 가장 많은데도 시험 시설이 턱없이 부족하고, 최근엔 시험 도중에 시스템이 고장나는 일까지 벌어졌다. 토플 주관기관은 한국에 대한 이런 푸대접을 당장 시정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 참에 푸대접을 우리가 자초한 건 아닌지도 따져볼 일이다. 토플은 기본적으로 미국 유학생들을 위한 시험이지만 우리 사회에선 영어시험의 유일한 표준으로 군림하다시피 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니 초등학생부터 직장인까지 무턱대고 응시하는 일이 적지 않다. 영어시험 때문에 온나라가 몸살을 앓는 건 분명 비정상이다. 사회적 영향력이 큰 교육기관과 기업들이 영어 일변도를 지양함으로써 과도한 영어 열풍을 식히는 데 앞장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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