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11.07 19:31
수정 : 2006.11.07 19:31
사설
서울경찰청이 이달 12일과 25일 서울 도심에서 벌어질 두 노총의 노동자대회를 허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심각한 교통 체증이 우려된다는 이유에서다. 민주주의의 기본 권리인 집회의 자유보다 주말의 교통 소통이 더 중요하다는 소리다. 참으로 한심하고 천박한 인식 수준이다. 국가의 주인인 국민이 자유롭게 집회를 열 권리는 경찰의 자의적 판단으로 제약해도 될 만큼 하찮은 것이 아니다. 두 노총의 노동자대회는 즉각 허용되어야 한다. 아니 경찰은 정당한 대회 개최의 권리를 침해하지 말아야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집회의 자유는 언론의 자유와 똑같은 무게로 존중받아야 할 권리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 언론의 자유를 행정기관의 자의적인 판단으로 제약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언론을 통한 자유로운 의사 표현과 토론이 건강한 사회를 만들고 지키는 데 필수적이라는 인식이 널리 확산된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의 통합과 안정을 해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의 과도한 의사 표현조차도 많은 이들이 너그럽게 용납한다.
그런데 집회의 자유는 본질적으로 언론의 자유를 대체·보완하는 권리이다. 언론이 어떤 이유로든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거의 유일한 의사표시 수단이 집회다. 그래서 언론으로부터 소외당하고 자신의 목소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고 느끼는 이들이 집회를 벌이는 건 언론의 자유만큼이나 존중되어야 한다. 집회의 주체를 따질 이유도 전혀 없다. 민주주의를 위협하지 않는 한 모든 집회는 보장되어야 한다.
경찰의 이번 결정은 전례에 비춰봐도 납득할 수 없다. 경찰은 그동안 질서 유지를 조건으로 노동자대회나 도심 행진 따위를 허용했었다. 게다가 집회 문화 또한 많이 바뀌었고, 화염병과 최루탄이 난무하는 폭력적 상황도 거의 사라졌다. 경찰이 궁색하기 그지 없는 ‘교통 체증’을 집회 불허 이유로 내세운 것 자체가 이런 상황 변화를 말해준다. 그만큼 집회를 허용하지 않을 근거 또한 더 희박해졌다는 이야기다.
도심 행진이 벌어지면 시민들이 어느 정도의 불편을 겪는 건 피할 수 없다. 그래서 불편을 최소화하라고 요구할 수 있고 집회 진행자들은 이를 존중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나의 불편 때문에 남의 권리 행사를 막자는 건 현명하지 않다. 이 요구는 결국 내 권리의 침해로 되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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