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11.14 18:18
수정 : 2006.11.14 18:18
사설
얼마 전 서울의 한 초등학교 6학년생이 급우들의 집단 따돌림(왕따)을 참다 못해 가출하면서 ‘졸업식 전까지 몸을 만들어 돌아와서 해볼 수 있는 만큼 해보겠다’는 메모를 남겼다고 한다. 다행히 이 학생은 나흘 만에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폭력은 폭력으로 맞서겠다’는 막다른 결심에 이르기까지, 이 아이가 겪었을 수치심과 고통은 평생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세상물정 모르고 뛰어놀 나이에 이런 고통을 강요당하는 참담한 교육 현실 앞에서 할말을 잃게 된다.
집단 따돌림이 물리적 괴롭힘과 폭력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문제는 학교와 어른들의 무관심 속에 학교 폭력이 초등학교까지 번진다는 점이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이 올해 조사한 자료를 보면, 학교 폭력을 경험한 초등학생 비율이 17.8%로 중학생(16.8%)보다 오히려 높게 나타났다. 학교 폭력이 중·고교뿐 아니라 어린 초등학생들한테까지 광범위하게 스며들었다는 얘기다. 특히 초등학교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학생은 공부 잘하고 인기도 많은 아이들인 경우가 많아, 피해 학생의 호소가 잘 받아들여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쉽게 폭력에 가담한다고 한다. 비단 우리만의 문제도 아니다. 이웃나라 일본도 요즘 피해 학생들의 자살 예고 편지가 교육 당국에 배달되는가 하면, 일선 학교장이 왕따 문제로 목숨을 끊는 사건 등이 잇따르면서 큰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학교 폭력은 철없는 아이들의 장난으로 보아 넘길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 나아가 각종 제도나 처벌 강화로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해마다 학교폭력 집중 신고기간을 정하고 학교 경찰(스쿨 폴리스) 제도까지 도입했지만 폭력은 근절되지 않는다. 근본 처방이 못 되는 탓이다.
우선 학교와 교사들이 학교 폭력을 쉬쉬하는 분위기부터 바뀌어야 한다. 일선 학교에선 문책이 뒤따를 것을 우려해 학교 폭력을 은폐하고 피해 학생한테 전학 등 불이익을 강요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학교 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는 언제든 뒤바뀔 수 있다.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학교는 책임 회피에 바쁘고, 학부모들은 ‘내 아이만 무사하면 된다’는 단견을 버리지 못한다면 문제 해결은 요원하다. 학교 폭력의 근원은 이처럼 이기적인 어른들의 그릇된 풍조가 낳은 그림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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