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11.14 18:22
수정 : 2006.11.15 03:10
사설
엊그제 어윤대 고려대 총장이 차기 총장 예비선거에서 부격적자로 지목돼 탈락했다. 어 총장은 대표적인 최고경영자형 총장으로, 2003년 취임 이후 신자유주의적 대학 개조를 추진해 왔다.
보수적인 재계 정치권 학계는 그의 작업을 우리 대학이 따라야 할 본보기로 여겨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따라서 이번 어 총장의 탈락은 시장주의와 효율성에 대한 맹신이 휩쓸고 있는 우리 대학가에 큰 경종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신자유주의자들은 그동안 대학이 시장 혹은 기업의 요구에 따라 변하기를 요청했다. 돈이 되는 학문을 중점 육성하고, 학생에겐 효율성과 경쟁 지상주의를 가르치도록 했다. 어 총장은 이에 맞춰 실용학문을 지원하고, 돈 안 되는 기초학문의 위축은 외면했다. 영어 강의를 확대하고 실용학문 위주로 외국인 교수 유치에 노력했다. “민족을 버리고, 조국을 등져야 한다”며 대학의 국제화를 강조하기도 했다. 재계의 기대에 어긋남이 없었다. 그 결과 그는 3500억원의 발전기금을 모을 수 있었다. 각 대학은 어 총장을 선망했다.
이를 위해 그는 독선도 주저하지 않았다. 기념관을 지어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줬다. 이를 막던 학생들에게는 가혹한 징계를 내렸다. 병설 보건대를 통합하면서 보건대생에겐 학생회 투표권도 주지 않았다. 이에 맞서던 학생들에겐 출교 처분을 내렸다.
학생 인권과 비판정신을 억누르면서도 문과대 교수들이 인문학 선언을 하자, “고대 교수들의 비판 능력이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얼버무렸다. 인문학 선언은 “무차별 시장 논리와 효율성에 대한 맹신으로 인문학 존립이 위협당하고 …” “대학의 상업화로 연구활동이나 교육 행위도 계량적 평가의 대상이 되고 상업적 생산물로 변질되고 있다”며 그를 겨냥하고 있었다.
신자유주의의 원조인 미국과 영국에서도 대학은 학생의 인문학적 소양과 리더십을 육성하고, 기초학문을 다지는 데 역점을 둔다. 옥스퍼드대는 파피루스 연구를 위해 연간 30억원의 비용을 들여가며 이집트 옛말 연구자를 교수로 채용했다. 미국 시카고대에선 총장이 고전 위주의 교과과정을 바꾸려다가 쫓겨났다.
아무리 신자유주의 물신숭배에 빠져들어도 대학만은 기초를 다지는 데 앞장서야 한다. 21세기 지식사회에선 충성스런 기능인보다, 비판 정신으로 무장한 자유로운 지성이 기업에도 기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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