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11.20 18:14
수정 : 2006.11.20 18:15
사설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임명 동의가 지연되면서 전 내정자의 자진 사퇴론이 정치권에서 나돌고 있다. 한나라당은 “여야 원내대표 간의 국회 정상화 합의의 이면에는 전 내정자의 사퇴에 대한 암묵적인 공감이 있었다”며 연일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열린우리당 등 여권 일각에서도 사퇴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공개적으로 주장한 사람은 부산의 조경태 의원을 빼고는 아직 없지만, 상당수 의원들이 사석에서는 “사퇴가 불가피한 것 아니냐”는 얘기를 하고 있다고 한다.
여당 지도부도 은근히 사퇴를 바라는 눈치다. 29일 이후에 헌법재판소장 임명 동의안 처리를 어떻게 하겠다는 의지 표명을 하지 않고 있으며, 여기저기서 불거지는 자진 사퇴론을 적극적으로 반박하거나 단속하는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일부 비대위원들은 사석에서 “더 방법이 없다” “청와대에서 해결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고 있다고 한다.
원칙도 없을 뿐더러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태도다. 처음부터 이 핑계 저 핑계를 내세워 사실상 전 내정자의 임명 저지 투쟁을 막무가내식으로 벌여온 한나라당의 사퇴론은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문제는 국정 운영의 주도적인 책임이 있는 여당이다. 야당의 생트집을 저지하고 바로 잡기는커녕 국회의 원활한 운영이란 미명 아래 ‘어쨌든 전효숙 당신 때문에 시끄러우니까 이제 좀 물러나주세요’하는 꼴이다.
헌재소장 동의안을 두 달 넘게 처리하지 못한 책임은 전적으로 국회에 있다. 그 중에 특히 잘못한 쪽은 애초 미숙한 절차를 밟은 청와대, 그리고 청와대가 새로 절차를 밟았는데도 막무가내로 처리를 반대한 한나라당이다. 지금이라도 국회법에 따라 찬반 표결을 하는 게 국회가 할 일이다. 이치가 이런데도 애꿎은 전 내정자에게 국회 파행의 책임을 뒤집어 씌우는 것은 파렴치하고 졸열한 태도다. 더구나 전 내정자는 여야의 정략적인 싸움의 피해자다. 이런 여당을 어느 국민이 신뢰할 수 있겠는가.
헌재소장 동의안 처리는 원칙과 법질서 문제다. 한 정당의 비합리적인 고집과 투쟁에 의해 당사자가 자진 사퇴하는 것이야말로 나쁜 선례를 남기는 일이다. 열린우리당은 비열하게 자진사퇴밖에 없다고 은근히 흘리지 말고, 어렵고 힘들지만 당당하게 원칙을 내세워 야당을 설득해내는 정치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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