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11.30 19:03
수정 : 2006.11.30 19:03
사설
국회가 어제 민주노동당의 반발 속에 비정규직 관련 법안을 통과시켰다. 임채정 국회의장이 법안을 본회의에 직권으로 상정해 찬반토론 없이 표결 처리했다. ‘날치기 통과’라는 말이 나올 만큼 서두른 것이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당리당략을 위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버렸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런 탓이다. 이로써 민주노총과 민노당을 중심으로 한 진보세력과 정부·여당의 거리는 더욱 벌어지게 생겼다.
이번에 통과된 비정규직 관련 법안은 비정규직 보호라는 명분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비록 정규직과 비정규직 차별을 금지하는 선언적 내용을 담고 있으나 사용 사유에 제한을 두지 않은 채 계약직(기간제) 사용기간을 현재 1년에서 2년으로 늘렸다. 그래서 기업들이 계약직을 마음껏 쓸 수 있는 기간만 늘려준 꼴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비정규직의 고착화 또는 안정화에 초점을 둔 법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국가인권위조차 사용 사유를 제한해야 한다고 지적한 걸 봐도, 이런 평가는 노동계 일부에서만 제기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파견직 노동자 상황도 그 전보다 더욱 나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이렇듯 법안에 문제가 많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노동계의 한 축인 민주노총을 철저히 배제한 처리 과정에 있다. 정부는 올해 들어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의견 차이가 나타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민주노총을 배제하는 전략을 밀어붙였다. 이번 비정규직 법 통과는 이 배제 전략에 정치권도 합세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배제 전략이 과연 어떤 결과를 부를지는 어렵잖게 예상할 수 있다. 현재 민주노총은 각종 노동 관련 법안의 국회 처리 반대를 위한 총파업을 벌이고 있다. 총파업의 규모가 예상보다 그리 크지 않고 사회 전반에 끼치는 여파도 심각하지 않긴 하다. 하지만 민주노총이 앞으로도 계속 투쟁 중심의 전략을 이어간다면, 노사 관계의 불안은 날로 커질 수밖에 없다. 또 이번에 통과된 법안이 시행된 이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상황이 더욱 나빠질 경우, 그들의 저항과 이에 따른 사회적 부담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는 결국 민주노총 배제 전략을 주도한 정부의 부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와 여당이 특정 노동세력을 철저히 배제하고도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큰 오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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