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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3.13 16:37 수정 : 2005.03.13 16:37

입시부정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한국사회의 입시부정은 최종 결승점에 있다. 그 최종 결승점은 대학 이름이 가진 서열이고 그 서열이 가진 학벌이다. 부조리한 구조를 뒤에 두고, 도덕적 해이만을 문제삼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다.

반론-‘도덕적 해이와 미래 세대의 반란을 보며’를 읽고

3월7일치 <왜냐면>에 실린 이종태 전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의 글이 당면한 교육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것 같아 반론을 제기하고자 한다.

이 위원의 글을 정리하면, 학생들의 수능부정과 학부모들의 입시부정은 상상도 못할 일이며 그 원인은 도덕적 해이에 있다는 것, 그래서 근시안적 사고를 벗어나 기득권을 포기하여 교육 난제 해결에 힘쓰자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내용은 이미 누군가 말했거나 대다수 시민이 상식적으로도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전직 교육개발원 연구위원의 분석치고는 부족하게 느껴진다.

이 위원이 수능부정과 입시부정을 상상도 못할 일이라고 한 것은 적이 걱정스러운 대목이다. 교육 연구위원의 생각치고는 다소 당황스럽다. 입시부정은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 어찌 상상도 못했을까? 하다못해 매 시간 치르는 쪽지시험도 성적에 영향을 준다면 부정행위가 일어나는 판에 일생일대의 중대사인 수능과 입시에서 어찌 부적절한 경우를 생각하지 않겠는가? 다만 그럼에도 대다수의 학생과 학부모들이 정직하게 행동하는 것은 내면의 양심에 따른 행동이며 적게는 처벌의 두려움에 따른 행동이 아니겠는가?


과정보다는 최종 결승점을 누가 먼저 통과했느냐에 관심을 두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는 의견은 지당한 말씀이다. 그렇다. 한국 사회의 모든 입시부정은 최종 결승점에 있다. 그 최종 결승점은 유동적이지 않고 고정적이다. 한번 정해지면 물릴 수가 없다. 대학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대학 이름이다. 이름이 가진 서열이고 그 서열이 가진 학벌이다. 고등학교까지 학업 성취의 결과로 대학이 결정되고 모든 사회적인 계층이 정해진다. 그러니 단 한 번의 시험으로 결승점 도착 순위가 결정되고, 상위 서열의 대학 입학만으로 출세가 보장된다. 이 마당에 누구든 이 한번의 입시부정에 유혹을 느끼지 않는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 교육의 여러 문제가 시작된다. 대부분의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드리워진 이런 부조리한 구조를 뒤에 두고, 그들의 도덕적 해이만을 문제삼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요, 언 발에 오줌 누는 격이다.

참으로 일대 혁신이 요구되는 바다. 그러나 기득권 포기에 앞서 문제의 본질에 대해 깊이 탐구하였으면 좋겠다. 본질을 뒤로한 채 회초리로 자신을 때리는 원로들의 퍼포먼스는 해프닝이다.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본질을 흐리고 오히려 구조를 더욱 공고하게 만들 것이다. 도덕적 해이를 문제 삼는 글은 오히려 교육문제 해결을 위한 발전적 논의를 흐릴 것이다.

국립대 통합 네트워크 논의와 같은 대학 서열 철폐와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논의가 활발히 전개되었으면 한다. 교육의 일대 혁신은 위 논의처럼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더는 그들의 도덕적 해이만을 문제 삼지 마시라.

박철원/신라대 교육대학원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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