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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또다시 무너진 벤처신화 팬택 |
국내 굴지의 휴대전화 제조업체 팬택계열이 경영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주채권 은행인 산업은행이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을 추진하기로 했으나 회사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팬택이 휴대전화 시장의 치열한 경쟁을 이기지 못하고 손을 든 것은 여러가지 점에서 안타까운 일이다. 팬택은 무선호출기 사업을 하는 소규모 기업으로 시작해 철저하게 바닥을 다지면서 매출 3조원을 넘는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박병엽 부회장 역시 무선호출기 영업맨에서 시작해 대기업의 총수가 된 입지전적 인물이다. 재벌기업들이 거의 모든 분야를 장악하고 있는 국내 경제 여건 속에서 그 틈을 비집고 새로운 성공 신화를 이루려는 시점에서 좌절한 것이다.
팬택은 오랫동안 다른 곳에 눈을 돌리지 않고 휴대전화 하나만을 고집해 왔다. 박 부회장 역시 주변의 경조사비를 회삿돈이 아닌 개인 돈으로 지출하는 등 누구보다 투명한 경영을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재벌기업들처럼 문어발식 확장을 하지도, 회계 처리에서 장난을 치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누구의 잘못일까? 물론 경영진이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 특히 매출 수조원대의 대기업으로 성장한 뒤에도 경쟁력 있는 경영 시스템을 갖추지 못하고 몇몇 개인의 의사 결정에 의존해 온 것은 무시할 수 없는 실패 요인이다.
그러나 팬택의 사례는 재벌 체제를 갖추지 못한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한다는 것이 한국 현실에서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보여준다. 팬택은 2년 전 독자 상표로 외국 진출을 꾀하면서, 지난해 ‘스카이’ 브랜드를 가진 에스케이텔레텍을 인수하고 한단계 도약을 시도하면서 급격하게 어려워졌다. 재벌기업이었다면 계열사들이 안팎에서 밀어주고 끌어주면서 위기를 벗어났을 것이다. 팬택의 좌절에 아쉬움이 남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정부도 정보통신 분야 산업정책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난 10여년 동안 수십조원의 돈을 쏟아부어 아이티 산업을 육성했지만 벤처기업이 제대로 성공한 사례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삼성전자, 에스케이텔레콤 등 재벌기업들만 쑥쑥 성장해 왔다. 기술이 있어도 시장 쟁탈전에서 밀리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나 현대차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중소, 중견 기업들의 성공신화는 더욱 중요하다. 그것이 기업가 정신을 고취하고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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