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12.14 19:37
수정 : 2006.12.14 19:37
사설
국내 최대 유통업체인 신세계가 기존 대형마트보다 작은 수백평 규모의 ‘미니 이마트’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동네마다 하나씩 대형 슈퍼마켓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신세계의 ‘동네 이마트’ 구상은 대형마트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다른 틈새시장에서 돌파구를 찾으려는 전략인 것 같다. 정용진 부회장은 “사이즈를 줄여도 이익이 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백화점, 대형마트, 편의점에 이어 대형 슈퍼마켓 시장을 둘러싼 치열한 경쟁을 예고한 대목이다.
기업이 이익을 좇아 새로운 업태를 개발하는 행위를 탓할 일은 아니다. 문제는 이미 ‘유통 권력’이 돼 버린 대형 업체들의 무차별적인 출혈 경쟁이 결국에는 지역 경제와 주민 피해로 귀착된다는 점이다. 현재 중소 유통업과 지역 상권은 시·군 단위까지 파고든 대형마트에 밀려 고사 직전 단계다. 지난 한해만 봐도 대형마트 매출액은 10% 이상 증가했으나 중소 유통업 매출액은 2조2500억원이나 줄었다. 이는 재래시장 114개의 매출을 합친 것과 맞먹는 금액이다. 몇 해 전부터 중소 유통업체들은 공동 브랜드 및 물류센터 활용, 재래시장 현대화 사업 등 눈물겨운 생존 투쟁을 벌였다. 만약 크기만 줄인 이마트가 동네 곳곳에 들어서고 다른 대형 업체들도 뒤따른다면 이들의 몰락은 시간 문제일 뿐이다.
비단 유통 시장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형 유통업체에 납품하는 제조업체의 채산성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인건비 부담 전가와 단가 후려치기 등 불공정 거래가 관행처럼 굳어진 때문이다. 대형마트의 신규 점포가 창출하는 일자리 수보다 그로 말미암아 일자리를 잃는 이들이 더 많다는 조사(중소기업청)도 있다. ‘동네 이마트’는 이런 대형마트의 부작용을 훨씬 더 급속히 악화시킬 가능성이 짙다. 그러나 대형마트에 대한 규제조차 허술한 터에 이런 무분별한 업태를 규제할 법적 장치는 전무한 상태다.
정부는 몇 해 전부터 재래시장 등 중소 유통업 활성화에 수천억원의 재정을 쏟아붓고 있다. 대형 유통업체의 무차별적인 사업 확장을 그대로 놔둔다면, 앞문을 활짝 열어놓고 뒷문 잠그는 식과 다를 바 없다. 기업 윤리에 맡길 문제가 아니다. 산업 왜곡으로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치르기 전에 정부가 할 일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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