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과학기술 분야 고급 인력의 국외 유출이 심각하다. 직업능력개발원 자료를 보면, 미국에서 과학기술 분야 박사 학위를 받은 뒤 귀국하는 비율이 1995년 69.5%에서 2002년에는 48.7%로 크게 하락했다. 향후 체류계획을 묻는 질문에도 73.9%가 현지에 머물겠다는 뜻을 밝혔다.미국의 연구 환경이 한국보다 좋은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한국도 상당한 경제발전을 이루었고,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를 눈앞에 두고 있다. 여건은 좋아졌는데 왜 귀국하려 하지 않을까? 사실 갈 곳이 없다. 대학, 기업, 정부 출연기관 어디를 가도 연구에 전념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연구개발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하는 곳은 기업이다. 하지만 과학자들에게 기업은 대학, 정부 출연기관에 이은 3순위 대상밖에 되지 않는다. 자율성이 없고 단기 성과에만 집착해 오히려 능력을 발휘하기 어렵게 돼 있다. 한국이 자랑하는 정보기술(IT) 분야에서도 응용기술만 있을 뿐 원천기술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업들은 우수 인재 확보에 열을 올리면서도 정작 이들을 활용하지 못한다는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정부 출연 연구소들 역시 마찬가지다. 외환위기 이후 성과 시스템을 도입한 결과 연구원들은 외부 과제를 수주하는 세일즈맨 신세로 전락했다. 비효율과 방만한 경영을 막으려면 경쟁과 성과 위주 시스템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용역 수주를 위해 연구원들을 밖으로 내모는 그런 방식은 곤란하다. 그뿐인가? 정권이 바뀌면 으레 국책 연구소 통폐합 얘기가 흘러나온다. 시한부 생명과 같으니 틈만 나면 대학을 기웃거릴 수밖에 없다. 적극적인 지원과 육성책 없는 성과 위주 시스템이 과학기술 인력을 밖으로 내모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경제가 발전했다고 해서 과학기술의 발전이 저절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장기적이고 일관된 계획 아래 꾸준한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어차피 기초과학을 기업에 맡길 수는 없다. 정부가 대학과 정부출연 기관에 대한 예산 지원을 계속 늘려가야 한다. 단기적인 연구성과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다. 몇몇 이름있는 과학자들한테만 돈이 몰리고 대부분의 국책 연구소들이 실험장비 하나 들여올 때마다 몸살을 겪어야 하는 그런 체제로는 고급 두뇌인력을 잡아두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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