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12.19 20:06
수정 : 2006.12.19 20:06
사설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에는 세계 환경위기 시계가 설치돼 있다. 지난 9월 조정된 위기시간은 9시17분이다. 1년 전보다 12분 늦어졌다. 9시 이후는 ‘매우 불안’을, 0시는 인류의 종언을 뜻한다. 한국의 시간은 1년 전보다 24분 늦은 9시29분이라고 한다. 롯데가 그룹의 상징적 건물인 롯데백화점에 환경시계를 설치한 것은 친환경 경영의지를 과시하려는 것이었다. 롯데로선 유통이 주력이니 다른 제조업체보다 유리하겠지만, 건설사를 자회사로 거느리고 있어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그래서 환경재단도 롯데에 힘을 보탰다.
그러나 재벌의 친환경 구호를 손쉽게 믿은 게 잘못이었을까. 롯데가 환경위기 시계를 설치하는 순간에, 자회사 롯데건설은 인천 시민의 마지막 숲인 계양산의 북사면 그린벨트 73만여평에 대규모 골프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었다. 평일에도 많게는 하루 1만여 시민이 찾아 쉬며 건강을 돌보는 곳이다. 반딧불이·도롱뇽·버들치·가재 등 1급수 생물이 살고, 맹꽁이·소쩍새·매 등 멸종위기 동물이 살기도 한다. 롯데건설은 로비력을 과신했던지 용도변경 허가가 나기도 전에 산림을 베어내기도 했다.
지자체나 시의회 쪽은 롯데의 계획에 솔깃해 있었다. 이들은 골프장이 운영되면 매년 40억~50억원의 세수가 생긴다며, 계양산을 지키려는 시민들을 몽상가로 내몰려 했다. 이런 재벌과 지역 정치인들의 결탁을 막은 것은 순전히 인천 시민이었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83% 가량의 시민은 골프장 건설에 반대하고, 찬성한 시민은 8%에 불과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인천시는 신청서를 반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근래 보기 드문 시민의 승리였다. 여기엔 시민과 함께하며 계양산 지키기에 헌신했던 지역 활동가들의 따뜻하면서 단호한 대응이 큰 힘이 됐다. 신정은씨는 56일 동안 등산로 나무 위 초막에서 생활했다.
그렇다고 문제가 풀린 것은 아니다. 땅 소유자인 롯데건설은 골프장 건설을 포기하지 않았다. 다시 신청하면 시민과의 분쟁은 불가피하다. 롯데는 그동안 환경학교, 환경체험 캠프, 환경공모전 등 사회공헌 활동을 펼쳤다. 롯데는 이제 그것이 겉치레가 아님을 보여주기 바란다. 사실 계양산을 몇푼 돈벌이에 이용하느니, 온전한 시민의 쉼터로 꾸며주는 게 유리할 것임을 롯데가 모를 리 없을텐데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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