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12.26 19:10
수정 : 2006.12.26 19:10
사설
국선 변호는 형사사건에서 돈없는 이들한테 나라에서 거저 변호인을 붙여주는 제도다. 가진 돈이 얼마냐에 따라 정의의 수준이 결정될 순 없다는 형사사법의 원칙에 따른 것이다. 정부와 법원이 올 들어 국선 전담 변호인제를 전국으로 확대한 데 이어, 지난 8월에는 영장실질심사도 국선 변호를 받도록 했다. 사실상 모든 피의자와 피고인으로 대상을 넓힌 것이다. 법률적 도움이 절실한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방어권을 확대하려는 노력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대목이다. 그러나 양적 확대에 치중하다 보니 질적인 측면에선 문제점이 적지 않다.
서울중앙지법 통계를 보면, 그동안 영장실질심사에서 국선 변호인이 맡은 사건의 기각률이 사선 변호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과거 무변호 사건에 견줘 기각률이 다소 높아지긴 했지만, 상대적으로 국선 변호의 질이 떨어진다는 평가는 피할 수 없다. 국선 변호를 부수적 업무로 여기고 무성의하고 불성실하게 변론하는 관행이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법원이 재판 직전에야 변호인을 지정하고, 영장실질심사 때 수사기관이 피의자의 법정 출석에 비협조적인 것도 충실한 변론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구속영장이나 공소장도 제대로 읽지 않고 무조건 죄를 인정하고 반성하라는 식의 형식적 변론이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국선 변호의 질을 높일 목적으로 도입한 국선 전담 변호인제 역시 한계가 많다. 전체 국선 변호 대상의 20%밖에 감당하지 못하는데다, 한 달 평균 수임건수가 일반 변호사의 10배인 40건에 이른다. 취지대로 질좋은 서비스가 가능할지 의문이다. 예산과 인력 부족을 해결하는 데 정부와 국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현행 변호사의 영업 관행과 충원 제도를 그대로 두고 공익적 법률 서비스를 강화하는 데는 기본적인 한계가 뚜렷하다. 미국에선 정부가 국선 변호인을 공무원으로 채용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이 도입되면 의료계의 공중보건의처럼 일정기간 공익 활동을 의무화하는 제도 도입도 생각해봄 직하다. 대한변호사협회는 국선·무료변호 등 연간 30시간 이상의 공익 활동을 권장하지만 의무 사항은 아니다. 누가 수백에서 수천만원짜리 사건을 놔두고 20만원짜리 국선 변호에 나서겠는가. 공익 활동에 인색한 변호사 업계의 자성이 절실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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