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12.27 19:14
수정 : 2006.12.27 19:14
사설
이필상 고려대 총장은 엊그제 “저의 부덕한 소치로 많은 분들에게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머리 숙여 사과했다. 표절 시비로 김병준씨가 교육부총리직에서 낙마한 것이 불과 5개월 전이다. 앞으로 이런 사과를 얼마나 더 들어야 하는지 착잡하다.
김병준 사태 때 적잖은 교수들은 그 정도를 문제삼는다면, 대한민국 교수 치고 공직에 오를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 수준의 제자논문 베끼기나, 자기표절은 일반적인 관행이었다는 것이다. 옳다고 주장하지 않은 게 다행이다. 이 총장의 사례는 이런 ‘송구스런’ 관행이 우리 학계에 얼마나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그가 받은 의혹은 이전의 표절 논란들과 판박이로 닮았다. 제자의 학위논문에 포함된 데이터와 내용을 거의 그대로 이용해 자기 이름으로 논문을 발표한 게 하나다. 자신이 낸 아이디어와 자료이니 표절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제자의 논문을 스승이 반쯤 베껴 발표하는 게 과연 이해될 수 있을까. 김 전 부총리도 그렇게 주장했다. 둘째로 그는 학술지에 발표된 제자의 논문에 제1 저자로 등재됐다. 제자의 요청에 따른 것이라고 하지만, 제자가 사정한다고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셋째는 다른 학자의 저술 내용의 일부를 자기 책에 옮겼다. 일반화된 이론이기에 일쑤 그런다고 하나, 출처를 기재하는 건 학문하는 자세의 기본이다.
세상의 관심은 이제 이 총장의 처신에 모아진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그가 사과 끝에 덧붙인 것처럼 “우리 학계의 연구윤리가 더욱 투명해지고 성숙해지도록”하는 일이다. 우리 학계는 연구윤리가 제도화되지 않은 탓에 표절이 드러나도, 관행이라는 방패막이 뒤에 숨어 책임을 피했다. 험악했던 김병준 사태를 거치면서도 바뀐 게 하나도 없었다. 최근 조사 결과를 보면, 연구윤리 헌장과 규정을 마련한 대학은 218곳 중 40곳(18.4%)에 불과했다. 그런 대학에서도 대개는 형식적으로 존재한다고 한다. 그래서 국제적 수준의 연구윤리를 제도화하고 검증 체제를 갖추도록, 정부가 강제해야 한다는 소리가 많다. 그러나 그건 대학이 스스로 할 일이다. 강제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교육정책 책임자에 이어 대학 책임자까지 표절 시비에 휘말린다면, 국제적인 ‘왕따’ 신세를 면치 못할 것임을 대학은 유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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