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12.28 19:05
수정 : 2006.12.28 19:05
사설
북한의 식량난이 심상치 않아 보인다. 올해 농사도 시원찮았던 데다가 지난 7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후 남쪽이 쌀·비료 차관을 보류하고 국제사회 지원도 급격히 위축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부는 인도적 지원은 순수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이런저런 눈치를 보느라 선뜻 행동에 나서질 못하고 있다. 사태가 더 나빠지기 전에 전향적인 모습을 보이길 바란다.
올해 북한의 식량 생산량 추정치는 지난해와 비슷한 430만~450만톤부터 40%나 줄어든 280만톤까지 다양하다. 적게 보면 60만~100만톤, 많게는 200만톤 이상의 식량이 부족하지만 지금으로선 외부에서 지원될 규모가 30만톤을 넘지 못한다. 국제사회를 대표하는 세계식량계획으로부터 식량을 공급받는 북한 주민은 한때 650만명에 이르렀으나 이제 100만명 선까지 줄었다. 식량 분배 서열에서 아래쪽에 있는 수백만명이 고스란히 위기에 노출돼 있는 상태다. 이대로 가면 내년 봄엔 많은 사람이 굶어죽을 거라는 전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과 부적절한 6자 회담 전략이 세계 여론에 부정적 영향을 끼쳐 식량 지원에 장애물로 작용하는 건 사실이다. 지원된 물자가 필요한 사람에게 제대로 전달되는지를 점검하는 시스템도 확립돼 있지 않다. 주민을 최우선으로 생각지 않는 북한 정권의 태도 역시 문제다. 식량위기가 10년 이상 계속되는 상황에선 지구상의 어느 정권이든 솔직하게 어려움을 털어놓고 국제사회에 도움을 요청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인도적 지원이라는 큰 원칙은 다른 요인들을 뛰어넘는다. 인도적 지원이 다른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돼 버리면 약자인 북한 주민들이 먼저 피해를 볼 뿐만 아니라 결국 그 정책 목표를 이루기도 쉽지 않게 된다. 지금 국내 민간단체는 대북 지원을 하려 해도 여력이 없다. 정부가 나서야 한다. 당장 식량·비료 차관을 제공하기가 어려우면 국제기구를 통한 우회 지원이라도 재개할 필요가 있다.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어제 장관 취임 뒤 연 첫 정례브리핑에서, 앞으로 6자 회담과 병행해 평화프로세스를 가동하기 위한 남북대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올바른 방향이지만, 그 이전에 대북 인도적 지원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한국이 먼저 움직여야 국제사회 분위기도 달라진다. 사람 목숨을 구하는 게 평화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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