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1.04 19:21
수정 : 2007.01.04 19:21
사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취임 직후부터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의 사형 집행에 대한 질문에 “후세인은 이라크인들에 대한 흉악한 범죄에 책임이 있고, 우리는 이같은 범죄의 희생자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며 “사형은 각국이 법에 따라 정하는 문제”라고 밝힘으로써 사형제를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해서다.
세계 주요 언론들과 인권단체들은 반 총장의 발언이 인권에 기초해 사형을 반대해 온 유엔의 기본방침에 반하는 것이며 절차상 허점이 많은 것으로 비판받은 후세인 처형의 정당성을 뒷받침한 것으로 인식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 출신 첫 유엔사무총장에 큰 기대를 거는 우리로서는 그가 취임 초부터 논란에 휩싸인 점을 안타깝게 여기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난제로 둘러싸인 세계를 향해 발언해야 하는 유엔사무총장은 ‘불 세례’를 통과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반 총장이 이번 논란에서 교훈을 얻어 앞으로 더 자신의 소임을 잘 해 내기를 기대한다.
반 총장 발언의 문제점은 몇가지로 지적할 수 있다. 우선 중립적 견지에서 평화를 증진시키는 소임을 해야 할 유엔사무총장으로서 후세인 사형 집행 이후 종파간 갈등 고조로 내전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이라크 현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부에서는 미국조차 후세인 처형과 거리를 두려는 상황에서 나온 그의 발언은 이전부터 그에게 제기돼 왔던 친미적 성향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킨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유엔이 인권의 최후의 보루임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점이다. 유엔은 반인도적 범죄자·학살자·전범도 사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공식 견해다. 또 유엔 192개 회원국 가운데 사형제를 유지하는 나라는 한국, 미국 등 70개국뿐이다.
이와 관련해 반 총장의 발언이 사형제를 두고 있는 한국의 외교 수장이었던 탓이 아닌가 하는 지적을 음미하게 된다. 우리나라도 9년째 사형집행을 하지 않아 사형폐지국 문턱에 있지만 정부는 폐지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인도적 측면에서 보면 사형제와 범죄율의 상관관계를 입증할 수 없는데도 사형을 유지해야 할 이유는 없다. 사형 반대를 공식방침으로 삼는 유엔의 수장을 낸 나라답게 우리도 이제는 사형제도 폐지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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