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1.07 19:12
수정 : 2007.01.07 19:12
사설
지난해부터 학계와 출판계에서 터져 나온 표절 시비가 해를 넘겨서까지 이어지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은 외국 유명 작가의 사진을 흡사하게 베껴 책 표지 등에 쓴 출판사 대표를 기소했다고 한다. <인생 수업>이라는 이 책은 지금도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베스트셀러다. 마광수 교수가 제자의 시를 마치 자신의 시인 양 시집에 실었다가 시집을 수거하기로 한 직후여서 충격은 더욱 크다.
이제 과연 누가 책을 믿고 예술을 믿을까 싶다. 이러다간 문화 활동 전반의 기반이 송두리째 무너지지 않을까 두렵기까지 하다. 게다가 수법도 날로 대담해지고 있다. 그동안 주로 논란이 됐던 일들은 학계의 논문 표절이었지만, 최근 출판계에서 문제가 되는 수법들은 일반인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대리 또는 이중 번역 논란과 수필 대필 논란, 도용이나 진배없는 시 무단 게재에 이어 유명 사진 작품을 고스란히 베껴 그리기까지 드러났다. 이 정도라면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방법이 동원됐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논문과 책 출판은 한 나라의 학문을 지탱하는 두 축이다. 논문 표절이 학문의 근본을 위협하는 문제라면, ‘불량 출판물’은 문화의 확산 도구를 불신하게 하는 훨씬 현실적인 문제다. 이 둘 가운데 하나가 무너져도 한 나라의 지성 또는 지식 생활 전체가 망가질 수 있다. 진정한 학문의 위기는 학계와 출판계의 신뢰 상실에서 비롯된다. 창작 활동에 대한 불신이 존재하는 한, 그 어떤 학문 진흥책도 소용없다. 돈만 퍼붓는다고 학문이 살아나진 않는다.
특히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출판물들이 대부분 베스트셀러들이라는 점은 우려를 더욱 크게 한다. 대리 번역 또는 이중 번역 논란을 빚은 <마시멜로 이야기>는 지난해 가장 많이 팔린 책이고, 대필 논란에 휩싸인 한 예술인의 책들도 수십만권이 팔렸다. 이번에 문제가 된 <인생 수업>은 지금도 인기리에 팔리고 있는 책이다. 그만큼 독자들이 느끼는 배신감은 더 클 수밖에 없고, 이는 그나마 책을 사던 이들마저 책을 외면하는 사태로 번질 수 있다.
출판계가 공멸하는 사태를 막으려면 이제라도 양식 있는 출판인들이 나서야 한다. 그들이 자정 노력에 나서지 않으면 ‘책은 또다른 상품’이라는 일부의 비뚤어진 시각을 바로잡을 수 없고, 불량 서적이 양서를 죽이는 출판의 황폐화도 더욱 깊어질 것이다.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