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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화해·협력, 우리가 판단해야 |
오늘부터 남녘 전기가 북녘 개성공단에 공급된다. 송전탑이 아닌 전봇대를 통한 배전식 전력공급이어서 비록 규모는 작지만, 남북 사이에 전기가 끊긴 지 무려 57년 만의 일이니 역사적 의미가 각별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북한 핵 문제로 한반도 평화가 크게 위협받는 상황이어서 개성공단 건설과 전기 공급이 지니는 의미는 더 엄중하다.
한반도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북한이 6자 회담에 나와 핵 문제를 대화로 풀어야 한다고 우리는 강조해 왔다.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해서는 안 되며, 스스로 핵을 포기하도록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이 북한에 체제 보장과 경제 지원을 약속해야 한다.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풀기 위해서라도 남북이 교류·협력 정책을 병행하고 더욱 강화해야 한다.
그러나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는 그리 녹녹지 않다. 북한과의 관계 증진을 한-미 동맹에 혼란을 주는 행위로 보는 시각이 나라 안팎에서 기승을 부린다. “국방백서에서 주적 개념을 삭제한 것이 한-미 동맹에 혼란을 주니, 누가 적인지 분명히하라”고 다그치는 헨리 하이드 미국 하원 국제관계위원장의 발언이 대표적이다. 개성공단으로 상징되는 대북 경제지원을 재고하라고 강변하는 것도 이런 강경한 시각의 연장선에 있을 터이다. 우리의 운명과 직결되는 문제를 미국 쪽 논리와 시각으로만 재단하려는 하이드 위원장의 발언은 외교적 무례를 넘어 오만하기 짝이 없다. 그의 발언이 미국내 강경파의 의중을 대변하는 것이라면 더욱 걱정스럽다.
정부의 안보정책을 책임지는 정동영 통일부 장관 겸 국가안보회의 상임위원장이 하이드의 발언을 두고 “그런 이분법적 사고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정면 반박한 것은 미국내 강경파의 득세 조짐을 방관해선 안 된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이 아시아를 순방하고, 북핵 6자 회담의 재개 여부에 온갖 관심이 쏠려 있는 터에, 찬물을 끼얹는 강경 흐름을 제때 차단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도 국내 일부 언론과 정치인들이 하이드의 오만 방자한 발언을 옹호하거나 거들고 나서는 것은 한심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우리 겨레의 앞날은 우리 스스로 개척하고 만들어간다는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우리의 국익을 미국의 눈높이에 맞춰 정하거나 양보할 수는 없다. 개성공단에 전기를 공급하는 것이 단순히 전력을 제공하는 것 이상의 뜻이 함축돼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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