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1.11 19:03
수정 : 2007.01.11 19:54
사설
노무현 대통령이 4년 연임 대통령제 개헌에 대해 정치권과 국민을 상대로 설득작업을 벌이고 있다. 전날 4부 요인 초청 오찬 회동이나 어제 여당 간부들과의 오찬, 기자간담회 등이 그런 맥락이다. 그렇지만 설득은커녕 논의 자체가 어려운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다. 개헌으로 가는 열쇠를 사실상 쥐고 있는 한나라당이 당론으로 아예 일체의 논의를 거부하고 있으며, 민주노동당도 개헌 논의의 중단을 요구한다. 애초 조건부 찬성 방침을 보였던 민주당도 소극적인 태도로 바뀌었다. 여야 정당 초청 청와대 오찬이 네 야당의 불참으로 당청 모임으로 쪼그라든 현실이 이런 상황을 잘 보여준다. 상호 불신이 워낙 커 노 대통령이 탈당하거나 설득한다고 야당의 완고한 태도가 바뀔 것 같지 않다. 여론 역시 4년 연임제라는 내용에는 찬성이 더 많지만, 연내 개헌에는 매우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여론조사 결과는 국민 다수가 올 대선을 현행 헌법대로 치르기를 바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럼에도 노 대통령은 기자간담회에서 “앞으로 이 문제를 논의하게 하는 것이 대통령의 책무”라며 “부결되든 가결되든 주어진 헌법의 권한을 착실히 행사하겠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굳은 자세에는 4년 연임제가 국가 장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나름의 판단이 확실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87년 체제’의 산물인 대통령 5년 단임제가 허물을 안고 있으며 대선과 국회의원 선거 시기를 일치시키는 것이 정치사회 비용을 상당히 덜 수 있다는 점에는 공감을 한다.
그러나 국가 운영에 관한 최고 규범인 헌법을 고치는 것은 정치인들의 소신이 아니라 구성원인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 따라서 정치권의 합의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여론이 충분하게 밑받침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통령이 고집스럽게 밀고 나갈 사안이 아니다. 개헌은 3당 합당 불참이나 부산 지역구 출마 등 노 대통령이 과거에 망국적 지역대립 구조를 깨기 위해 보였던 소신이나 원칙과 동일한 성질의 문제가 결코 아니다.
특히 부결이 예상되는데도 개헌안을 발의하겠다는 것은 부정적 여파만 증폭시킬 우려가 높다. “(국회에서) 부결되는 것을 불신임으로 꼭 생각해야 한다고 보지 않는다”며 부결돼도 중도 하야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고 해서 통과가 되든 말든 개헌안을 내도 괜찮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부결 때의 파장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더구나 여야가 맞선 상황에서 개헌안을 대통령이 발의하면 정국은 개헌 문제로 소용돌이칠 수밖에 없으며, 그 경우 부동산 문제 등 민생은 국정의 뒷전에 밀리게 된다.
여러 상황을 따져볼 때 노 대통령이 개헌론을 더는 밀어붙이지 않는 게 낫다고 본다. 정치는 현실이다. 아무리 뜻이 좋고 내용이 옳더라도 여론이 수용하지 않으면 접을 줄 아는 게 지도자의 덕목이자 용기다. 현 제도의 문제점과 개헌의 필요성을 제기한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 개헌에 대한 공감대는 확인됐으니, 아쉽더라도 대선 뒤 과제로 미루고 국정에 전념하는 게 좋겠다. 지금은 역발상이 아니라 국민의 소리에 귀기울여 상식과 순리를 따르는 게 중요하다. 남은 1년 동안 새로운 일을 벌이기보다는 실정을 만회하는 데 역점을 두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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