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1.16 19:00
수정 : 2007.01.16 19:01
사설
재판 결과에 불만을 품은 전직 대학 교수가 사건을 맡은 재판장을 석궁으로 쏴 다치게 하는 일이 벌어졌다. 자신의 교수 재임용 탈락의 부당성을 다툰 항소심에서 패소하자 퇴근하는 판사의 집앞에서 저지른 일이다. 충격적이고 놀랍다.
재판에 관한 한 법관은 어떤 유·무형의 압력으로부터도 자유로워야 한다. 헌법과 법률이 독립성과 신분을 보장하는 이유다. 재판을 이유로 법관한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는 건, 범죄 행위를 넘어 법치와 민주주의의 근간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물며 대학 교수를 지낸 이가 ‘국민 저항권’ 운운하며 법의 판단을 폭력으로 응징하려 했다니 위험천만하다. 이번 일을 한 개인의 돌출 행동으로 지나칠 수 없는 까닭이다.
석궁을 쏜 김아무개씨는 입학시험 문제의 잘못을 지적했다가 ‘괘씸죄에 걸려 재임용에서 탈락했다’며 소송을 냈다고 한다. 그러나 1·2심 재판부는 “재임용 심사는 시험문제와는 무관하며, 탈락 사유가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그는 1심 패소에 항의해 오랫동안 1인 시위를 벌였고 담당 판사들을 비난하다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되기도 했다고 한다. 오랜 세월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재판 결과가 자신의 뜻과 다르자 극단적인 일을 벌인 것이다.
과거에도 재판 과정과 판결에 불복해 법정에서 소란을 피우거나 오물을 던지는 등의 사례가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이번처럼 법의 판단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 개인적인 폭력과 테러로 이어진 경우는 거의 없었다. 최근 법조 비리와 법원-검찰 갈등으로 가뜩이나 사법 불신이 심각한 터이다. 이번 일로 재판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확산될까 우려스럽다.
피습 사건을 계기로 법원 안팎에서 사법 불신을 극복하고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건 다행스런 일이다. 사법부에 대한 신뢰는 법의 권위만을 강조해선 이뤄지지 않는다. 지난해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를 습격한 가해자는 “아무도 억울함을 들어주지 않아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충실한 재판과 심리가 우선돼야 함은 물론이지만, 사건 당사자들의 억울한 심정을 있는 그대로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재판에 승복하는 분위기는 크게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김씨의 크나큰 잘못에도 동정적 여론이 일부 이는 까닭을 법원은 곰곰이 성찰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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