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2005년 여름 일본은 석면 공포로 떠들썩했다. 건축자재 생산업체 ‘구보타’가 26년 동안 79명의 전·현직 직원이 석면 피해로 숨졌다는 사실을 털어놨던 것이다. 정부의 추가 조사 결과 생산업체에서 석면 피해로 숨진 사람은 374명이었고, 88명이 치료 중이었다. 간접 피해자까지 합치면 앞으로 40년 동안 10만명의 희생자가 나올 것이라는 예측도 나왔다. 일본인의 불안은 당연했다.바다 건너 이야기로 치부할 일이 아니었다. 우리의 석면 사용량은 일본보다 많으면 많았지 적지 않았다. 석면의 위험성을 깨달은 일본은 1983년부터 석면제품 수입을 금지했다. 그러나 우리는 바로 그해 이전보다 갑절 이상의 석면을 수입해 사용했다. 게다가 우리는 석면가루가 풀풀 날리는 수많은 공공시설을 방치하다시피 한다. 우리의 석면 피해 규모는 예측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최근 서울지하철 2호선의 조사 대상 역 17곳 가운데 14곳, 그리고 다른 지하철역 8곳 가운데 3곳 승강장 천장 등에서 광범위하게 석면이 나왔다고 한다. 그동안 수시로 엘리베이터·전기·통신·소방 시설물을 설치하거나 교체했던 곳이었다. 이 과정에서 석면 먼지가 승강장의 시민에게 노출되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일부 역은 석면 먼지가 노출되도록 천장이나 벽의 표면이 벗겨져 있었다고 한다. 지하철 승강장은 하루 수십만명의 시민이 이용한다. 끔찍한 일이다. 게다가 이 사실은 2001년 서울지하철공사와 노조, 환경단체의 공동조사에서도 밝혀졌다고 한다. 공사는 지금까지 소리 없는 살인자 석면에 시민을 무방비 상태로 맡겨뒀던 셈이다.
정부는 올해부터 석면이 포함된 일부 건축자재와 브레이크라이닝 등의 사용을 금지하고, 2009년부터 모두 금지하기로 했다. 서유럽보다 10여년 늦긴 하지만 다행이다. 그러나 반쪽 대책에 불과하다. 학교나 지하철 승강장 등 수많은 공공건축이나 시설물은 소리 없는 살인자를 이미 함유하고 있다. 정부는 이런 건축물에 포함된 ‘과거의 석면’으로부터 시민을 지켜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공공시설물의 석면 함유 실태를 모두 조사할 일이다. 그래야 철저한 석면 관리와 안전한 철거를 추진할 수 있다. 석면은 미세량이어도 치명적이어서 안전기준조차 정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