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1.23 19:28
수정 : 2007.01.23 19:28
사설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인혁당 재건위) 사건 관련자 8명한테 무죄가 선고됐다. 유신독재에 항거하다 형장의 이슬이 된 희생자들이 32년 만에 사법적 진실을 되찾은 것이다. 재심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하는 순간, 법정은 환호와 눈물로 뒤범벅됐다고 한다. 유족과 관련자들의 수십년 고통과 회한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는가. 사법적인 명예회복에 이어 국가 차원의 사과와 합당한 배상이 따라야 할 것이다.
재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내란 예비·음모, 반국가 단체 구성, 전국민주청년학생연맹(민청학련) 배후 조정 등 핵심 혐의를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수사기관의 신문조서는 물론 공판조서의 증거력과 임의성도 없다고 판단했다. 폭압정치의 도구로 전락한 국가기관의 불법적인 고문·조작 행위뿐 아니라, 당시 군사법정의 총제적인 재판 오류를 인정한 것이다. 재판부는 유신헌법과 긴급조치의 합법성은 “심사 권한 밖”이라며 판단을 유보했다. 그러나 민청학련의 유신반대 운동이 정부를 전복하거나 국헌을 문란케 한 행위로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당시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모든 행위를 불법화한 긴급조치와 이를 뒷받침한 유신헌법의 정당성을 사실상 부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인혁당 사건의 가해자 중 한쪽은 바로 사법부다. 대법원은 군사법원의 사형 선고를 그대로 확정했고, 이 때문에 ‘사법 살인’이란 씻기 힘든 오명을 썼다. 그러나 재심 판결문 어디에서도 이런 잘못된 과거를 반성하는 대목을 찾을 수 없다. 당시 군사법정의 오류는 인정하면서 이를 추인한 법원의 잘못은 고백하지 않은 셈이다. 물론 재판부가 이례적으로 공판조서의 증거력을 부인하고 무죄를 선고한 것 자체가 전향적인 과거청산 의지의 표현일 수 있다. 그러나 이용훈 대법원장은 재심 판결문에 과거 법원의 잘못을 명시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이번 판결이 사법부가 권력에 예속된 오욕의 역사를 바로잡는 계기가 되기 위해서라도 좀더 적극적인 성찰과 고백을 기대한다.
군사독재 시절 자행된 수많은 인권유린과 고문·조작 사건의 진실 규명은 여전히 더디고 까다롭다. 재심을 통해 명예회복에 이른 건 인혁당 사건이 두번째다. 지금도 100건이 넘는 사건들이 소명을 기다리고 있다. 재심요건 완화, 국가범죄의 시효 배제, 재심 특별재판부 설치 등 더 많은 디딤돌이 필요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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