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1.31 21:33
수정 : 2007.01.31 21:33
사설
박정희 정권 시절 긴급조치를 근거로 한 법원 판결들을 분석해 어제 진실화해위원회가 보고서를 냈다. 부당한 공권력을 행사하면서 생긴 인권침해사건을 밝혀,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려는 노력 가운데 하나다. 판사들의 이름을 밝히는 것을 놓고 적잖이 논란이 일었으나, 공개한 것이 당연하다고 본다. 판사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국가기관이다. 판결문에 다 나와 있던 이름을 뺐다면 그것이 더 비겁한 일이 됐을 것이다. 당시의 행동이 떳떳했다고 주장하면서 이름은 밝히지 말라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다.
이번 일을 놓고 논란이 많은 것은 아직도 우리 사회의 공직 윤리가 확고하지 못하다는 방증으로 보인다. ‘긴급조치는 유신헌법에 바탕을 둔 실정법의 지위를 가졌으므로 법관이 그에 따라 판결을 한 것을 문제삼아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국민이 법관에게 요구하는 윤리의식과 큰 거리가 있다. 인권의 최후 보루여야 할 법관이 무고한 사람한테 고통을 안겨주는 판결을 한 것은 어떤 논리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 그런 일이 다시는 없어야겠지만, 만약 그런 상황에 다시 처한다면 법관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확고한 규범을 세우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정치권력으로부터 사법부의 독립을 지키는 데도 필요한 일이다.
판결에 참여했다고 해서 모두 똑같은 도덕적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 배석만 한 경우도 있을 것이고, 무리한 적용을 피하고자 보이지 않게 애쓴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런 사정을 충분히 참작해야 한다. 진실로 화해에 이르려면 이제 해당 법관들이 먼저 나서서 피해자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 무리한 논리로 정당화하려고만 한다면 오히려 더 큰 반발을 부를 것이다.
법원이 할 일도 많다. 오늘날 법원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대혁신이 필요할 정도로 크다. 첫단추는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는 데서부터 채워가야 한다. 이번 조사 결과를 두고 대법원이 “사법부의 과거를 되새기는 계기로 삼겠다”고 밝힌 것은 한 걸음 나아간 것이다. 그러나 다른 부문의 과거사 정리와 견주면 법원의 속도는 매우 느리다. 이번 보고서 발행도 사실 법원이 해야 할 일을 진실화해위원회가 대신했다는 지적을 새겨들여야 한다. 과거사 정리와 이에 필요한 후속 조처를 서둘러 마련하고, 법관의 소명의식 및 윤리의식을 높이는 일에 법원이 앞장서야 한다.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