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우리나라에서 일하는 이주 노동자들이 받는 차별은 이루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사회적 편견과 멸시부터 제도적, 법적 차별까지 아주 다양하다. 그래서 한국을 인종차별 국가와 크게 다름없는 나라로 보는 외국 인권운동가들도 나올 정도다. 이주 노동자 차별은 문명 국가로선 참으로 수치스런 것이다.이런 상황에서 또하나의 충격적인 차별이 확인됐다. 중금속 중독 보호에서도 한국인 노동자와 이주 노동자는 차별 대우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연구진이 납을 추출하는 사업장 네 곳을 조사한 결과, 한국인 노동자들은 혈중 납 농도가 평균 28.9㎍/㎗였으나 이주 노동자들은 55.8㎍/㎗로 나타났다. 미국의 생물학적 노출 기준치가 30㎍/㎗이니, 이주 노동자들이 큰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얘기다. 이들의 근무 햇수가 대체로 1년 미만이어서 납중독 증상은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계속 방치하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는 불보듯 뻔하다. 게다가 외국인 노동자의 숙소조차 사업장과 너무 가까워 납으로 오염될 위험이 높다고 하니, 보통 일이 아니다.
비록 조사 대상 이주 노동자가 13명밖에 안 되지만, 이 결과는 그동안 많은 이들이 짐작하고 걱정하던 것을 구체적으로 확인시켜주는 의미가 있다. 노동 현실을 생각하면 이번 조사 결과를 예외적인 것쯤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많은 노동계 인사들은, 이주 노동자들이 몰려 있는 중소 업체들의 작업 환경이 아주 나쁘다고 지적한다. 심지어 산재 위험 측면에서 보면 우리 현실이 자꾸 퇴보하고 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나마 한국 노동자들은 유해 화학물질에 대한 정보를 얻기도 상대적으로 쉽지만, 이주 노동자들은 언어장벽 때문에 이조차도 쉽지 않다. 사업주가 이런 위험을 잘 인식해 특별히 배려해주지 않는 한 거의 무방비로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2005년 초 경기 화성의 부품업체에서 일하던 타이 여성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노말헥산에 중독되자 산재대책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번 조사 결과는 그 이후에도 상황이 별로 나아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큰 사건이 터지면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했다가 조금 지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식의 전시 행정이 계속돼서는 안 된다. 정부는 더 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실질적인 예방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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