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2.07 19:16
수정 : 2007.02.07 19:16
사설
영국의 양심적인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이스라엘 정책을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 남아공의 반아파르트헤이트 투쟁을 이끈 조 슬로보의 딸 질리안 슬로보, 노벨상 수상 작가 해럴드 핀터 등 300여 명이 서명한 성명은, 이스라엘 정부 정책에 대한 반대를 반유대주의로 낙인찍는 상황이 오히려 반유대주의와의 싸움을 어렵게 한다고 지적하고 보편적 인권은 이스라엘은 물론 팔레스타인 점령지에도 존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명은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아무 희망도 없이 끔찍한 상황에서 살아가고 있다면서 유대인을 대표한다고 주장해 온 영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 유대인 단체들이 점령지 사람들의 인권보다 점령한 권력의 정책만을 끊임없이 지지해 왔다고 비판했다. 서명자들은 나아가 적절한 협상에 바탕을 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는 지지하지만, 이스라엘 정부가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해결책을 강제하는 데는 반대할 것임을 분명히했다.
유대인 가운데 이스라엘의 점령지 정책에 비판적 목소리를 낸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집단적으로 목소리를 낸 것은 드문 사례다. 특히 이들이 이스라엘 정부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정책을 무조건 지지해 온 유대인 단체들을 비판하며, 유대인 사회에서도 언론자유가 필요하다고 한 대목은 의미심장하다.
미국과 유럽 등 서방 세계에서 유대인 단체들이 얼마나 큰 힘을 갖고 있는지는 부연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경제계 언론계 학계 문화계 등에 다양하게 포진한 유대인들은 끊임없이 자신들을 역사의 희생자로 부각시키면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과 중동에서 저지르는 과오에는 눈을 감는다. 또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겐 사정없이 공격한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해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에게 벌인 공격이다. ‘팔레스타인에, 아파르트헤이트가 아닌 평화를’이란 책을 통해 이스라엘의 점령지 정책을 비판한 카터 대통령을 그들은 반유대주의자라고 비난했다. 대학에선 그의 특강 일정을 취소하기도 했다. 이렇듯 미국 대통령을 역임하고 노벨평화상을 받은 카터에게조차 재갈을 물리려는 상황에서 유대인 내부에서 제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고무적이다. 양심적 목소리들이 더 큰 울림으로 퍼져나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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