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2.09 18:46
수정 : 2007.02.09 19:32
사설
회삿돈 286억원을 빼돌려 생활비와 대출금 이자를 갚는 데 쓰고, 이를 감추려 회계장부를 조작한 사람이 있다. 검찰은 그를 구속하지 않았다. 법원은 유죄를 인정했으나, 형 집행을 유예했다. “국민이 그것을 납득하겠느냐”는 대법원장의 쓴소리가 있었으나 2심 형량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법원의 확정판결이 난 지 6개월도 채 되지 않아 그는 특별사면 대상에 포함됐다. 박용성 두산그룹 전 회장 얘기다.
어제 정부가 박씨를 비롯한 기업인 160명과 선거사범 223명 등 모두 434명을 특별사면하기로 했다. 명분은 늘 그랬듯 경제 살리기와 국민 화합이다. 이름이 거론되다 부정적 여론에 밀려 뺀 이도 있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이들이 적잖이 포함됐다. 반면 생계형 범죄자나 양심수는 명단에 보이지 않는다. 정권 말기나 선거를 앞두고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일이다. 형평성을 잃은 특별사면 남용을 막도록 대통령의 사면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여론은 오래 전부터 거셌지만, 권력은 이번에도 잠시 욕을 먹는 길을 택했다. 낯이 참 두껍다.
법치주의와 삼권분립의 원칙을 훼손하고, 국민에게 냉소를 안겨주는 특별사면의 남용을 더 두고볼 수는 없다. 사면법을 개정해 대통령의 권한 남용을 이제라도 막아야 한다. 국회의 사면법 개정 시도가 없었던 것은 물론 아니다. 16대 국회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공동으로 사면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으나, 고건 대통령 권한대행이 거부권을 행사한 적이 있다. 당시 법안은 특별사면에 앞서 반드시 국회의 의견을 듣도록 한 것인데, 국회가 사면권을 견제하면 사면을 정치적 흥정의 대상으로 만들 위험이 있으므로 신중해야 한다고 본다. 또 여러 개정안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 등 몇몇 법을 어긴 경우 사면 대상에서 아예 빼도록 했는데, 위헌 소지가 있다는 지적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이런 점들을 두루 고려해 오래 갈 수 있는 개정안을 국회가 다시 마련해야 한다고 본다. 적어도 형 확정 판결이 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람, 형기를 일부밖에 채우지 않은 사람이 특별사면을 받지 못하도록 요건을 법에 엄격히 명시해야 한다. 사면은 법원이 판결한 형의 효력을 깨는 것인 만큼 사법부의 의견을 반드시 듣는 절차를 담을 필요도 있다. 연말에 대선이 치러진다. 이대로 가면 특별사면 제도가 또다시 불법선거 운동을 조장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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