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2.09 18:47
수정 : 2007.02.09 18:47
사설
국제앰네스티가 ‘무노조 경영’ 원칙을 고수하는 삼성그룹에 맞서 10년 동안 외로운 싸움을 벌여 온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을 양심수로 선정했다. 이 땅의 노동자가 앰네스티의 양심수로 선정된 것은 처음이지만, 어제 발표된 사면 대상자 명단에 그의 이름은 역시 빠졌다. 정부가 앰네스티 선정 양심수라는 짐을 벗을 기회를 포기한 만큼 그를 석방하라는 요구가 국제무대에서 더욱 거세질 것이다.
김 위원장은 2003년 삼성에스디아이(SDI) 노동자들의 분신 사건과 관련해 ‘업무방해죄’로 실형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집행유예 기간인 2005년 <삼성재벌 노동자 탄압백서>를 만들었다가 삼성 쪽으로부터 명예훼손 등 혐의로 고소당해 다시 실형을 선고받았다. 현재 그는 집행이 유예됐던 3년형까지 더해져 서울 영등포교도소에서 2년째 징역을 살고 있다. 김 위원장을 옭아맨 혐의가 ‘업무방해’와 ‘명예훼손’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한국처럼 노동운동을 두고 구속, 수배, 경찰력 투입, 강제해산, 해고, 손해배상, 가압류, 업무방해·명예훼손 혐의 등 민·형사상 탄압 수단을 한꺼번에 동원하는 나라는 별로 없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진리가 실현되려면 ‘시민법’ 못지않게 ‘사회법’ 체계가 확립돼야 한다. 형식상 평등한 인간이 현실적으로는 평등하지 않으므로 평등을 실현하려고 체계화된 것이 사회법이다. 강한 사람의 권리는 규제하고 약한 사람의 권리는 보호해야 한다. 불평등하게 적용함으로써 평등을 구현하는 것이다. 우리는 사회법 정신이 지나치게 취약하다. 노동법이 특히 그렇다. 대학에서는 대부분 선택과목으로 가르치고 사법시험에도 거의 출제되지 않으니 공부하는 학생이 많지 않다. 사법연수원에서도 소수만 공부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배출된 법조인들이 노동 사건을 올바른 사회법 관점으로 판단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헌법이 보장하는 단체행동권을 사용하여 회사에 손실을 입힌 노동자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물어 수십억원의 가압류 결정을 내리는 비상식적인 일이 생기는 것은 이 때문이다. 노동 사건을 종합적 시각에서 제대로 판단할 수 있도록 법조인 양성제도가 개선돼야 한다. 삼성도 그동안 고수해 온 ‘무노조 경영 체제’의 변화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기술혁신만으로 ‘세계 일류기업’을 오래 유지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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