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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2.27 19:03 수정 : 2007.02.27 19:03

사설

전국 법원 23곳 형사 항소심 재판장들이 그제 대법원에 모여 “뚜렷한 이유 없이 항소심에서 1심 형량을 깎아주는 관행”을 없애기로 했다. 형이 ‘지나치게’ 무겁거나 가벼워서 부당한 경우가 아니면, 될수록 1심 판단을 존중하겠다는 것이다. 지극히 당연한 얘기인데도 이번 결정에 눈길이 쏠리는 것은 그동안 우리 법원의 항소심 판결이 너무 온정적이어서 그 구실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이다. 법원에 대한 신뢰를 높이려는 노력의 하나로 이를 환영한다.

우리 사법제도에서 1심과 항소심은 범죄 사실을 확인하고 피고인에게 어떤 형벌을 내려야 할지를 다룬다는 점에서 성격이 같다. 이렇게 사실심을 두 번에 걸쳐 하는 것은 항소심에서 한 번 더 신중한 판단을 함으로써 누구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려 함이다. 하지만 드러난 범죄사실이 분명하고, 양형이 원칙에 따라 이뤄졌다면 항소심 판결이 1심과 달라질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그동안 우리 법원은 항소심에서 1심 판결을 파기하는 비율이 무려 47~48%로, 미국이나 일본의 두세 배나 됐다. 항소를 하면 형량이 줄어든다는 기대는 항소심을 사실상 1심으로 보게 만들었다. 합의부에서 1심을 한 사건의 경우 항소율이 무려 51~59%에 이른다.

이렇게 항소가 필수절차가 되면 소송비용이 늘어날 뿐만 아니라, 돈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에 형벌의 불평등이 생기기 마련이다. 특히 법원은 재벌 총수나 정치인 등 힘있는 사람들한테는 1심에서 낮은 형량을 선고하고, 항소심에서 다시 형량을 깎아줘 사법 불신을 부채질했다. 재판장들이 이번 회의에서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해 온정적으로 항소심 형량을 깎아주던 경향을 반성한 것은 의미가 크다.

물론 항소심 재판부가 1심 판결을 존중하는 것만으로 문제가 다 풀리는 것은 아니다. 1심 판결을 제대로 해 피고인들이 굳이 무리하여 항소하지 않아도 되게 하는 게 더 중요하다. 그 바탕 위에서, 항소심이 힘있는 이들일수록 온정을 더 베푼다는 불신을 털어내야 한다. 대법원은 1심에서 양형 심리 절차를 분리하고 양형 조사관 제도를 도입하는 등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했다. 재판부에 따라 양형이 왔다갔다하지 않게 그 기준을 구체화하기로 한 것도 좋다. 사회적으로 관심이 집중된 사건에서부터 법원이 이번 결정에 담은 의지를 보여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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