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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3.06 18:40 수정 : 2007.03.06 18:52

사설

지난해 개정돼 오는 7월부터 시행되는 비정규직 관련 법 규정들이 말뿐인 규정이 될 것임을 보여주는 일이 벌어졌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 1월 중순 법의 허점을 낱낱이 분석한 책자를 회원 기업들에 배포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내용 가운데 상당수는 이미 예견돼 논란을 빚은 것들이지만, 그동안 별로 부각되지 않은 내용도 담겼다.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경총이 이런 식으로 허점을 찾아내 널리 알린 것은 심했다. 비정규직의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하자는 법 개정 취지에 공감한다면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하진 말아야 정상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론 경총을 탓할 일이 아니다. 문제의 본질은 허점투성이인 법 규정에 있다. 그러니 책임은 허점을 뻔히 알면서도 ‘비정규직을 방치할 수 없다’며 개정 작업을 밀어붙인 정부와, 법 통과를 합작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에 있다.

경총이 정리해 놓은 법의 허점을 살펴보면 현장에서 비정규 노동자들이 얼마나 큰 배신감을 느낄지 걱정스러울 지경이다.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양산을 위한 법이라고 크게 반발한 건 익히 알려졌지만, 상당수의 비정규 노동자들은 그래도 조금 나아지지 않겠냐고 기대했을 것이다. 정부가 ‘비정규직 2년이면 정규직이 된다’고 선전했기 때문이다. 경총도 ‘정규직화는 부담이 너무 크다’고 엄살을 부렸다. 그런데 이 책자는 엄밀하게는 정규직이 아니라 ‘무기한 계약직’이 된다는 걸 근거로 삼아, 임금 등 근로조건에서 정규직과 차별을 둬도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심지어 고용보장을 피해가는 편법까지 소개했다.

허점은 이뿐이 아니다. 불법파견으로 판정되면 고용의무를 부과하는 조항조차 사용자가 버티면 사실상 무기력해진다. 파견직으로 2년 동안 사용한 뒤 계약직으로 바꾸면 모두 4년 동안 비정규직으로 고용할 수 있고, 55살 이상의 노동자는 영원히 비정규직으로 고용할 수도 있다. 이 정도면 비정규직의 고용 안정을 보장한다는 법 취지는 완전히 실종되고 만다. 이 책자는, 비정규직 양산 및 고착화를 위한 법이라는 노동계의 주장이 정확한 것이었음을 ‘훌륭히’ 입증하고 있다.

해법은 단 하나뿐이다. 될수록 빨리 법을 개정해 허점들을 보완하는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진정 비정규직 종사자들에게 고용만이라도 제대로 보장할 의지가 있다면 법 개정을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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