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3.11 20:27
수정 : 2007.03.11 20:27
사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9일 미국의 거대 미디어그룹인 타임워너의 리처드 파슨스 회장을 만났다. 그리고 파슨스 회장이 대통령을 만난 뒤 한 발언은 이 만남이 굉장히 부적절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는 뉴스전문채널 <시엔엔>(CNN)의 한국어 방송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현행 방송법이 금지하는 것이자, 미국이 허용을 요구하고 있는 사항이다.
청와대는 시장 개방 문제가 언급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서울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이 벌어지는 때에 대통령이 이해 당사자인 미국 기업인을 만났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대통령이 특정 외국 기업인을 만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청와대가 더 잘 알 것이다.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서도 민감한 시기에 이런 만남은 피하는 것이 상식이다. 정부가 이 분야를 개방하려 한다는 소문이 파다한 상황이기에 더욱 그렇다. 언론노동조합이 성명을 내어 대통령의 행태는 타임워너의 요구 수용을 내비친 것으로 이해된다고 지적한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방송을 비롯한 언론 개방의 여파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는 점이다. 얼마 전 정부의 협상 관계자는 이 문제를 방송시장에 끼칠 영향과 국민이 외국 방송을 들을 권리를 함께 감안해 결정하겠다고 했다. 방송 개방을 시청자의 편리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한심하다. ‘시엔엔 한국어 방송’은 외국 뉴스를 빠르고 편하게 접하는 정도의 일이 아니다. 보도 채널 승인제도의 취지가 무너지는 것이고, 한국의 방송 주권이 위협받는 문제다. 지금도 케이블방송은 온갖 미국 프로그램들로 채워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뉴스채널의 직접 진출까지 허용한다면 방송의 미국 종속은 되돌릴 길이 없어진다. ‘안방 극장’을 내주는 건 스크린쿼터 축소와도 비교할 수 없는 영향을 사회에 끼친다.
여론의 다양성과 문화 정체성은 눈에 보이지 않기에 중요성을 느끼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한번 무너지면 다시 회복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미국은 방송 직접 진출 외에도, 지상파 방송의 국내 제작 프로그램 편성쿼터 축소, 방송사업자의 외국인 지분 확대, 뉴미디어 시장 개방까지 요구하고 있다. 방송은 그저 많은 산업 가운데 하나가 아니다. 미국의 개방 요구 가운데 핵심 사안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수용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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