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3.19 18:16
수정 : 2007.03.19 19:52
사설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어제 기자회견을 열어 한나라당 탈당과 함께 ‘새로운 정치질서’ 창조를 선언했다. ‘새로운 정치질서’가 어떤 모습을 띨지 아직 알기는 어렵지만, 이른바 범여권의 통합신당 창당 움직임과 어떤 식으로든 연계를 맺을 거라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나라당의 대선 예비주자인 이른바 ‘빅3’ 중 한 명이었던 점을 감안할 때 급격하고 갑작스런 변화다.
그로서는 산사에서 밤을 새우는 등 엄청난 고민과 번민을 했겠지만, 국민들로서는 매우 당혹스럽고 혼란스럽다. “무능한 진보와 수구·보수가 판치는 낡은 정치구조를 교체”하겠다는 그의 포부와 이상이 막연해서가 아니다. 명분과 기치가 무엇이든 그의 행동이 당내 경선과 결과 승복이라는 절차적 민주주의의 성숙을 바라는 국민들의 일반 정서와는 많이 어긋나기 때문이다. 특히 1997년 이인제씨의 신한국당 탈당과는 형태가 다르지만, 결국 당내 경선에서 이길 가능성이 보이지 않자 미리 다른 길을 택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정당을 쉽게 택하고 바꾸는 행태는 정당정치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정치 불신을 낳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정당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성심만 강조하는 것도 현실적이지 못하다. 민주노동당을 제외하고는 현재 모든 정당이 집권 목적에서 급조하거나 임시로 수선한 정당들이기 때문이다. 정당이야말로 노선과 정체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생각과 정체성이 다른 사람들이 한 정당의 울타리에 모인 것이 얼마나 정치 발전에 해악이 되는지는 열린우리당의 사례가 잘 보여준다. 이런 면에서 1970년대 민주화 운동에 적극 참여했던 손 전 지사의 한나라당 ‘이식 실험’은 결국 실패였으며, 정체성에 따른 정당의 분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사례다.
그는 한나라당을 떠나면서 “군정의 잔당들과 개발독재 시대의 잔재들이 버젓이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자신이 10년 이상 몸담았던 당을 갑자기 비난하는 것은 여론의 전폭적 지지를 받기 어렵지만, 그의 중도 개혁노선조차 포용하지 못하는 한나라당의 현상도 국민들에게 갑갑하기는 마찬가지다. 손 전 지사의 행로는 확실히 ‘더 어렵고 험난한 길’이 될 것이다. 그의 실험이 절차적 하자를 극복하고 민주발전의 계기가 될지 국민들은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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