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3.19 18:17
수정 : 2007.03.19 18:59
사설
대학 새내기들에 대한 선배들의 폭력이 체육대학만의 일이 아님이 드러나고 있다. 지난주말 충남 계룡산에서 한 대학 독어독문학과 학생들이 새내기들을 괴롭히는 모습이 잡혔다. 군대의 ‘얼차려’와 같은 일이 펼쳐지는 현장은, 젊음의 패기와 열정으로 달아오르기 마련인 ‘엠티’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새내기들에게 ‘얼차려’를 시키던 2학년 학생들이 목소리가 작다는 이유로 선배들에게 혼쭐이 나기까지 했다니, 군복을 입지 않았다뿐이지 군대와 뭐가 다른가? 요즘엔 차라리 군대가 덜 할지도 모르겠다.
체육대학 학생들의 폭력과 폭언이 드러날 때만 해도, 상당수 사람들은 체육대학에 한정된 일로 짐작했을 터이다. 체육대학생들을 폄하해서가 아니라 규율과 질서, 단체행동을 강조하는 분위기를 고려한 짐작이다. 폭력에 찌들었던 우리 사회에서는 규율과 폭력의 경계를 혼동하는 일이 너무 잦았다. 이런 과거의 악습은 자율과 개성, 지성을 강조하는 다른 학과에서는 자취를 감췄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현실은 이런 기대와 꽤 거리가 있는가 보다. 비록 소수일지라도 이들이 유독 예외적인 대학생들이라고 믿을 만한 근거는 별로 없다. ‘하나의 추억’이라는 선배 학생의 말은, 폭력을 ‘전통’으로 묘사하는 체육인들의 말과 별로 다름없이 들린다. 폭력을 전통이나 추억이라고 말하는 건, 자신이 폭력에 길들여져 있음을 고백하는 것과 다름없다.
폭력은 폭력일 뿐이다. 이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다. 이 진실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것들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것들은 보통 관행화한 모습을 띠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진실을 못 보는 개인을 탓하기 전에 관행으로 굳게 한 억압 장치들을 깨뜨려야 한다. 이 작업의 하나는 대학들이 폭력을 금지하고 엄격히 처벌하는 학칙을 만드는 것이다.
1990년대 후반 여대생들을 중심으로 성폭력 금지 학칙 제정 운동이 벌어졌다. 지성의 전당이라는 대학에서 성폭력을 몰아내자는 이 요구는 몇몇 대학이 실제로 학칙을 바꾸는 걸로 열매를 맺었다. 이 운동은 한편으로 성폭력 예방 교육 효과도 톡톡히 발휘했다. 대학의 폭력 금지 학칙도 같은 효과를 낼 것이다. 좀더 장기적인 대책은 초·중·고교에서부터 폭력의 폐해를 제대로 가르치는 것이다. 제도적 규제와 지속적인 교육이 병행될 때라야 폭력은 뿌리뽑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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